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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박승혜의 소신 육아] 딸아, 넌 아이 낳지 말아라?

By박승혜 베이비조선 객원기자(mercyup@naver.com)Posted2018.07.24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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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나는 근처에 사는 친언니와 뜨끈한 국물 요리를 후루룩 먹으며 장래에 태어날 손자, 손녀를 과연 우리가 키워줄 수 있겠는가에 대해 열띤 이야기를 나눴다. 특히 2명의 딸에게 친정엄마 소리를 듣게 될 언니는 벌써 이런저런 생각이 많았다.

언니와 진지하게 장래 이야기를 한 건 몇 주 전 우리 집에서 3일 머물고 간 남동생네 육아를 돕고 난 후였다. 서울에 볼일이 있었던 남동생네는 3살 첫째와 갓 100일을 앞둔 둘째까지 온 가족이 올라왔다. 가족 모두 힘들 시기인지라 나는 물론 근처 사는 언니까지 합세해 조카들을 돌봐주었다. 그렇게 언니와 나는 오랜만에 몸으로 하는 육아를 체험하게 됐다.

남동생네 둘째는 보통의 아이처럼 누군가의 품에 꼭 안겨있기를 좋아했다. 그래서 언니와 서로 번갈아 가며 안아주었다. 동생에게 사랑을 빼앗긴 남동생네 첫째는 잘 노는 듯싶다가도 둘째를 퍽퍽 쳐서 감시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놀아줘야 했다. 여러 장난감을 짧게 놀고 내버려 두는 3살 까꿍이의 육아 수발을 들다 보니 체력이 절로 소진됐다.

남동생네가 내려간 날, 나는 팔목이 시큰거리고 어깨가 아프기 시작했다. 언니는 ‘아기를 얼마 안아주지도 않았는데 고관절이 아프다’며 헛웃음을 터트렸다. 다시금 우리의 평균 이하 체력과 골골대는 약한 몸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상황이 이러하니 자연스레 둘이 만나 미래의 손녀, 손자 양육 문제에 대해 깊은 대담을 나눌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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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화두는 “딸들에게 ‘아이 낳으면 엄마가 도와줄 테니 걱정 말고 낳아!’라고 할 수 있겠는가?”였다. 둘 다 독박육아를 했기에 딸들에게는 도움을 주고 싶은데 지금 상황에서는 우리가 먼저 나서서 등 떠밀 자신이 없었다. 그러면 딸들이 도와 달라 SOS를 쳤을 때 도와줄 수 있을까? 보통 친정엄마가 많든 적든 딸의 출산과 양육을 도울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최소 60이 넘는 나이에 우리가 버틸 수 있을까? 물론 아는 분 중에는 딸이 쌍둥이를 낳자 낮에 함께 있는 것은 물론 밤에도 데리고 자는 체력을 타고난 사람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 젊은 나이(?)에도 몸이 버티지 못하는데 그때는 이겨내기 힘들 거란 생각이었다.

뜨겁게 이야기를 나눈 언니와 나의 결론은? 먼저, 돈을 많이 모으기로 했다. 그때 우리 체력으로 도와주기 힘들면 일단 돈이라도 모아놔 도우미를 쓰게 하든, 편리한 육아용품을 사주든지 하자고 했다. 둘째는 운동을 열심히 하기로 했다. 얼마 전 읽은 <마녀체력>의 저자는 40 넘어 꾸준히 운동한 결과 철인3종 경기에 참가하는 여성이다. 저자처럼 지금부터 꾸준히 운동한다면 아이를 잠깐씩 안아줄 체력은 갖추겠지 싶다.

그런데 출산이야 당사자 마음이고, 먼 미래의 일인데 이리 설레발이다. 하지만 조카들은 벌써 생각이 있다. 평소 너희는 선물 같은 존재라고 딸들에게 말해줬던 언니네 초3 첫째는 육아가 힘든 일이라고 해도 자신은 아이 키우는 기쁨을 누려보고 싶다고 했단다. 언니네 딸들은 벌써부터 아이 낳으면 엄마 도움이 필요하다며 자기들끼리 같은 아파트에 꼭 붙어살 거라고 미리 선포했단다. 5살 우리 딸은? 물어보니 자기는 아기를 돌보고 싶단다. 아마도 잠깐 누워 방긋 웃는 백일 된 조카 키우는 상상을 했으리라. 한 가지 확실한 건 지금보다 아이 키우기 더 좋은 세상이 된다면 내가 등 떠밀지 않아도, 자기들이 큰 결심하지 않아도 낳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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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엄마는 자기 딸에게 ‘자식 낳으면 고생만 하니 너는 자식 낳지 말아라’ 한단다. 나는 어떤 말을 딸에게 해줄 수 있을까? 물론 딸의 의사를 존중하겠지만 딸이 나에게 조언을 구한다면, 힘들겠지만 혼자 살아가기보다 아이를 낳아 함께 살아보라 권하고 싶다. 헬조선에서 아이 키우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주변에는 둘, 셋 낳는 사람들이 많다. 시댁과의 갈등, 육아의 무게, 많은 선택지의 포기라는 요소가 끼어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주는 행복이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기 때문일 거다. 그 행복감을 딸아이도 누려봤으면 좋겠다. 남들은 결혼, 출산, 육아라는 도식화된 인생표가 싫다고 하지만 각자의 선택이다. 나는 내 선택이 좋았고, 내 선택이 주는 만족감 때문에 힘들어도 웃을 수 있다.

지난 주말, 온 가족이 등산을 했다. 비행기 타고 바다 건너 놀러 가지 못해도 집 근처 산을 타는 것만으로 온 가족은 헉헉거리며 즐거워했다. 이렇게 삶을 기쁘게 써 내려가길 마음먹으며 살아가는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 아이는 뭐라 권하지 않아도 스스로 행복한 선택을 할 거라 믿는다. 일단은 딸이 어떤 선택을 할지 모르니 기쁜 마음으로 쇼핑을 줄이고, 운동 시간을 팍 늘려야지. 그리고 지구 평화를 위해 잠깐씩 기도도 하고.


박승혜 베이비조선 객원기자(mercyup@naver.com)
글을 쓴 박승혜 객원기자는 5세, 8세 두 아이를 키우는 동시대 육아맘이다. 출산할 때 척추 무통주사 대신 라마즈 호흡법을 활용하고,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아이를 위해 카시트를 앞 보기로 바꾸는 등 소신 있는 육아를 하고 있다. 그는 아이들이 책을 통해 세상을 배우고 좋은 인성을 갖췄으면 하는 마음으로 ‘성품 독서지도사’ 자격증을 취득했으며, 책 육아와 성품 육아에 집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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