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전문가칼럼

[채트리오맘의 ‘기본 충실 참육아'] 꿈꿔본다. 육아를 인정하는 사회를!

By이순영Posted2018.07.10 17:29

해당기사 크게보기 해당기사 작게보기 이메일발송 해당기사 프린트 페이스북 트위터

기사 이미지

공자, 예수, 마호메트와 함께 세계 4대 성인 중의 한 명이었던 부처. 그에게도 자식이 있었다. 그런데 그는 자식에게 ‘장애’라는 뜻의 ‘라훌라’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수행을 떠났다. 자신의 수행을 방해하는 짐, 장애가 된다는 것이 이유다. 인류의 행복을 위해 주옥같은 말씀을 설파하셨던 분도 육아는 힘들었던 모양이다. 그런 일이 바로 육아다. 하물며 우리같이 평범한 엄마에게 육아가 쉬울 리 있겠는가. 수행자의 인생에 고난의 길이 펼쳐지는 시기가 바로 육아하는 시간이다.

그런데 누가 육아의 공로를 인정해주는가? 그나마 육아가 어떤 일인지를 알만한 남편조차 가치를 몰라주는 일이 육아다. 육아하는 사람이 세상에 몇 없었다면 추앙의 대상이 되었을 법도 하다. 하지만 육아의 상황은 주변에서도 흔히 접할 수 있는 일이라 노고에 비해 인정받는 일이 거의 드물다. 심지어 엄마라는 존재를 집에서 애나 키우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존재할 정도다.

‘엄마’는 각자의 신념을 가지고 사회 최초 단위인 한 가정을 이끌어가는 핵심 인물이다. 그리고 세상을 좋은 방향으로 변화시키고 역사를 만들어 나가는 혹은 그 이상의 일들을 해내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도 우리가 처한 육아 환경의 현실은 엄마들이 사회적으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육아를 하는 데 있어서 하나의 스트레스가 되기도 한다.

엄마들은 사회의 배려를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서글프게도 우리 사회는 아이 엄마를 우대해준다거나 배려해주는 것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한 엄마가 아이 앞에서 흡연하는 남자에게 불을 꺼달라고 부탁했다가 뺨을 맞았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물론 이 사건은 상식적이지 않은 한 개인의 일으킨 문제라고 할 수 있지만, 한국 사회가 엄마들이 육아할 때 어떠한 사회인지를 보여주는 것과 결부되어 있기 때문에 남 일 같지 않다.

미국에 와서는 이런 것들이 더 극명하게 비교가 됐다. 한 번은 막내를 데리고 우체국에 간 적이 있었는데, 다리를 다쳐 목발을 짚고 있는 남자가 문을 잡아주는 것이었다. 이런 배려에 익숙하지 않아 내가 문을 잡겠다고 하니, 이건 자기가 할 일이라며 그는 끝까지 문을 잡아주었다. 미국에서는 여자가 지나갈 때 문을 잡아주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또 한 번은 뉴욕에 있는 유명한 음식점에 갔을 때의 일이다. 사람이 많아 자리에 앉기가 쉽지 않았다. 한 테이블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내가 막내 아이를 안고 있는 것을 보고 자리를 떠나면서 ‘여기 앉으세요’라고 말했다. 그때 이 상황을 몰랐던 할아버지가 그 자리에 먼저 앉았다. 장유유서(長幼有序)가 미덕처럼 여겨지는 유교 문화에서 자랐던 나였기에 어르신이니까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려 했지만, 그곳에 있던 다른 사람들이 일제히 그 할아버지를 제지하며 이 엄마가 먼저 왔으니 일어서 달라했고 나는 그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설령 이 분이 먼저 왔었더라도 아이가 있으니 그쪽이 양보해야 한다며 할아버지를 만류했었을 것이다. 미국의 문화는 아이를 데리고 있는 엄마가 우선으로 대접을 받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이와 다르게 한국 사회는 육아맘들에게 있어 육아의 고충을 덜어내는 방향이 아니라 오히려 가중하는 방향으로 나아있다. 엄마가 힘든 것을 보듬어 주는 사회가 아니란 뜻이다. 그러니 원래 힘든 육아가 더 힘이 든다고 느껴질 수밖에 없다. 경제적으로 한국은 선진국 대열에 올랐다고 할 수 있지만, 육아에 관한 의식은 많이 낙후되어 있는 것이 매우 아쉽다. 그러면서도 이구동성으로 엄마들은 애를 잘 키워야 한다고 말하니 말이다.

우리가 ‘육아서는 육아서일 뿐’이라고 반응하며 육아서에서 나온 것처럼 육아를 펼치기 힘들다고 여겨왔던 부분들이 사실 사회에 기인하는 것이 많다. 아이 키우는 엄마가 평안해야 모두가 행복해지고 이것이 사회로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미국의 국력 부강을 위해 힘썼던 미국 26대 테오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은 “"좋은 엄마, 현명한 엄마는 심지어 사회에서 가장 유능한 남자보다 더 중요하다. 엄마의 커리어(경력)는 사회에서 성공한 남성보다 더 명예롭고 더 유용하다."고 했다. 우리 사회가 이런 의식을 가지고 엄마들을 배려를 해주는 것이야말로 좋은 사회를 만드는 지름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좋은 엄마가 좋은 아이를 길러 내고, 좋은 아이가 좋은 사회를 만들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가 아이 키우는 엄마들을 귀하게 여기고 인격적 대우를 한다면 이것은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전달이 된다. 아이들 또한 서로서로 존중하는 것들을 사회 안에서 배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한국 사회가 엄마들이 육아하는 데 있어 앞으로는 좋아질 것이라고, 더 나아질 것이라고 섣불리 희망적 전망을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반복되는 힘든 육아의 시간 속에서 정신 줄을 놓지 않는 엄마들이 육아 부심을 가질 수 있게 한국 사회는 반드시 변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의견에 힘을 싣고 더 많이 공론화되기를 바란다. 그래야 우리의 딸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육아를 할 수 있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육아가 아무리 고되고 힘들다 하더라도 그 노고만큼 엄마들이 사회로부터 인정을 받고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우리 아이들은 자신들이 잘 자랄 수 있도록 배려를 해준 사회에 보답하는 아이로 자라게 될 것이다. 그렇게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더 좋은 사람이 되어 환원시켜주는 구성원으로, 그리고 그런 구성원들로 하여금 발전하는 사회, 나 그리고 너 우리 모두의 발전이 더 나은 미래로 연결될 것이다.



이메일발송 해당기사 프린트 페이스북 트위터

목록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