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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박승혜의 소신 육아] 엄마 인생, 제2막이 시작됐다

By박승혜 베이비조선 객원기자Posted2018.06.18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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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좀 바쁘다. 두 아이를 초등학교, 어린이집에 각각 보내면서 ‘육아’를 좀 덜어냈으면서 뭐가 바쁘냐 싶을 테다. 하지만 요 몇 달 사이 ‘내 일’이 새로 추가됐다. 애들도 어느 정도 컸겠다, 나만의 시간도 생겼겠다, 나이도 좀 먹었겠다, 이제 내 삶을 살아보자 싶어 이일 저일 시작했던 거다.

아이 키우는 일 이후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별로 없다. 그럴 겨를이 없을 만큼 바쁘기도 했지만, 언젠가 하고 싶은 일이 생겨나지 않겠느냐는 근거 없는 생각도 있었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라면’이란 애매모호한 기준점을 지나면 내 삶을 살리라 생각했다. 다행히 첫째가 초등학교에 잘 적응해주었고, 둘째 역시 낮잠 문제만 빼면 그럭저럭 어린이집에 잘 적응했다. ‘어느 정도’란 기준이 충족됐음을 느끼게 됐고, 자연스레 엄마 인생의 제2막이 열렸다. 2막이 열리는 시간은 보통 오후 1시까지다. 낮잠 자지 않고 일찍 오는 둘째 덕에 일주일에 2번을 제외하고는 신데렐라처럼 딱딱 시간 맞춰 들어간다. 그래서 언제나 아쉬운 시간에 입맛을 다시며 어린이집 앞에 선다.

이때만을 기다려왔던 나는 먼저 운동을 시작했다. 뭘 해볼까? 그동안 해왔던 헬스·수영·요가·발레를 선택지에 올려봤지만 딱히 구미가 당기는 게 없었다. 그러던 차에 친구가 요즘 ‘핫’하다는 줌바를 추천해줬고, 바로 수강 신청했다. 줌바는 단순히 춤만 추는 게 아니라 근력 운동까지 겸해 운동량이 상당하다. 몇 주간은 운동 끝나면 집에 가 뻗을 정도로 힘들었다. 살이 빠질까 했는데 운동량만큼 밥 양이 늘어, 몸무게는 제자리걸음이다. 그래도 뭉툭했던 허리가 약간 들어갔다는 사실을 큰 위안거리로 삼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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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를 가정 보육하면서 체력과 여건을 이유로 미뤄둔 독서토론 모임도 시작했다. 마침 첫째 초등학교에 학부모 독서토론 모임이 있었다. 예전의 나였다면 모임 장소가 학교라서, 참가자가 같은 학교 학부모라서, 탈퇴는 어떻게 할까 미리 걱정해서 가입 안 했을 거다. 하지만 아이 키우는 아줌마가 돼 좋은 점은 용기가 생겼다는 거다. 아이 키우면서 산전수전 겪으니 자신감이 생겨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하여튼 결과는? 가입하길 잘했다. 학부모 선배들에게 학교와 아이들 이야기도 듣고, 토론을 하며 몇 해 묵은 갈증을 풀 수 있었다.

4월부터는 매주 수요일 동화 작가 수업도 듣는다. 언젠가 우리 아이들을 위해 그림책을 쓰고 싶은 마음만 저장하고 있었다. 도서관 홍보물에서 우연히 관련 수업을 보고 앞뒤 재지 않고 바로 등록했다. 생각했던 그림책이 아닌 단편 동화를 공부하게 됐다. 수업 끝에는 작품 하나도 완성해야 한다고 해서 고뇌하며 쓰고 있다. 완성을 경험하는 데 무게를 두니 그다지 어렵지 않게 진도를 빼고 있다.

한 달에 한 번 아이 반에 가서 그림책을 낭독하는 ‘책 읽어주는 가족’도 시작했다. 아이 반으로 들어가야 해서 망설였지만, 누군가 해야 하는 일이라면 일단 자원하자 싶었다. 둘째까지 일찍 준비해서 어린이집에 보내고, 1교시 시작 전 도착해 책을 읽어주는 일은 사실 쉽지 않은 일이다. 매달 다른 책을 여러 번 읽고 연습해야 하는지라 시간 투자도 제법 해야 한다. 하지만 호기심에 찬 눈으로 이야기를 듣는 아이들 앞에서 내 시간을 기꺼이 내줄 수 있음에 오히려 더 감사했다. 다들 좋은 사람으로 잘 자라길 바라는 마음으로 책의 양식을 부지런히 먹여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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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또 뭘 해 볼까, 뭘 배워 볼까 두리번거리는 중이다. 남들 보기에 겁도 없이 잘도 하는구나 싶겠지만 나 역시 여전히 뭔가를 배우고 시도하는 게 두렵다. 하지만 시작이 어렵지 눈 찔끔 감고 선 넘으면 곧 신세계가 펼쳐진다는 걸 몇 번의 경험으로 알게 됐다. 예전에 남편 따라 강원도 산골짜기에 살았을 때 30살 넘어 처음으로 수영·기타·해금·테니스를 배웠다. 문화원에서 배워 돈도 얼마 들지 않았다. 여전히 기억하고 잘하는 것도 있지만 까먹은 것도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배우는 그 시간을 행복하게 즐겼으면 그걸로 됐다는 주의다. 취미가 아닌, 죽기 살기로 한 공부도 다 까먹었는데 뭘 더 바랄까? 게다가 의도하지 않게 배웠던 일을 써먹는 날도 있으니 손해처럼 느껴지는 시간도 아니다.

이렇게 많은 일을 벌여놓고 보니 뭐 대단한 2막 인생인 줄 알았더니 사실은 중구난방 카오스(혼돈) 같은 삶이 아닌가 싶겠다. 누군가는 ‘한 가지 일을 진득하게 해봐야 하지 않겠느냐?’ ‘돈 버는 일은 안 하고 배우기만 해도 되는가?’란 질문을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렇게 이것저것 배우면서 이 나이에 새로운 재능을 찾아 일하게 될지 누가 알겠나? 내 인생의 꽃밭에 씨를 여러 개 뿌려놔야 몇 개는 땅에서 고사하더라도, 싹을 활짝 틔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내는 씨도 발견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다.

100살 인생살이에서 아직 반도 못 살았다. 100살까지 잘 살아내려면 열심히 나를 키워야 한다. 대견하게 크도록 스스로를 팍팍 밀어줄 참이다. 남편은 자기 일에 바쁘고 아이들 역시 제 인생 바쁘니, 내 인생 내가 챙겨야지. 오늘도 농부가 돼 내 삶에 분주히 씨 뿌리고, 물을 주고 있다. 아이들 떠난 자리가 허전할 틈 없이 바쁜 2막 인생이다.

*편집부의 실수로 원고 순서가 바뀌어 게재됐습니다. 이 글은 박승혜 객원기자가 연재하는 ‘“엄마, 몇 시에 데리러 올 거야?”’의 전편입니다.

박승혜 베이비조선 객원기자(mercyup@naver.com)
글을 쓴 박승혜 객원기자는 5세, 8세 두 아이를 키우는 동시대 육아맘이다. 출산할 때 척추 무통주사 대신 라마즈 호흡법을 활용하고,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아이를 위해 카시트를 앞 보기로 바꾸는 등 소신 있는 육아를 하고 있다. 그는 아이들이 책을 통해 세상을 배우고 좋은 인성을 갖췄으면 하는 마음으로 ‘성품 독서지도사’ 자격증을 취득했으며, 책 육아와 성품 육아에 집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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