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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쓸모없는 일은 없더군요”…미 시민권 포기하고 해병대 간 ‘스타 덕후’

By김세영 베이비조선 기자(young0221@chosun.com)Posted2018.06.15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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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원씨는 “누가 하라고 시켰으면 게임이든 공부든 열심히 할 수 없었고 해병대도 안 갔을 것”이라며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하다 보니 책까지 쓰고 통일부에서 일하는 의외의 길(道)이 생겼다”고 했다. /사진=김종연 C영상미디어 기자

새로 나온 책을 쭉 살피다가 ‘쇼 미 더 스타크래프트’(동아시아)라는 신간에 눈이 멎었다. 지난 20년간 게임 스타크래프트를 하면서 깨친 전략과 철학을 정치·군사·경제 같은 딱딱한 소재에 대입해 분석했단다. 작가 이력이 특이했다. 대원외고와 미국 스탠퍼드대를 졸업한 뒤 미 시민권을 포기하고 해병대에 입대했다. 별종이다 싶었더니, 직업이 또 반전이다. 한국에서 제일 보수적이라는 공무원이다. 통일부 사무관 이성원(31)씨 얘기다. 어떤 성장 과정을 거친 사람인지 궁금했다.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이씨는 몸에 잘 맞는 감색(紺色) 수트에 수십 마리 코끼리가 있는 넥타이를 매고 나타났다. 반면, 머리는 군인처럼 짧고 말에 별 꾸밈이 없었다.
 
◇학창시절의 8할은 ‘스타크래프트’…좋아하는 일엔 하루 14시간도 집중

이씨는 현재 통일부에서 국제 협력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생각지 못한 직업이다. 그는 “뭐든 하고 싶은 게 생기면 식음을 전폐하고 매달리는 성향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최근 출간한 책 ‘쇼 미 더 스타크래프트’도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스타크래프트로 책을 쓸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죠. 20년 가까이 스타크래프트 전략 짜는 데 골몰했고 여기에 학·석사 지식과 해병대 경력까지 붙으니 책 한 권을 쓸 만한 내용이 됐습니다.”

이야기는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버지가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밟을 때 태어나 미국 시민권자가 됐다. 국내 대기업 영국 지사에 근무하게 된 아버지를 따라 3세부터 영국에서 지내다가 초등 4학년 때 한국에 돌아왔다. 이듬해, 블리자드사(社)의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이 나왔다. 매일 방과 후 향한 곳은 언제나 PC방. 이씨는 “영국에선 학교가 끝나면 부모님 차를 타고 집에 가야 했다. 그런 점에서 방과 후 PC방을 가는 건 정말 ‘신세계’였다”고 했다. 게임이 빠져드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한 판에 20분 걸리는 이 게임에 밤낮을 잊고 매달렸다. 이씨는 게임용 아이디(ID)를 만든 다음, 한 판이라도 지면 자존심이 상해 아이디를 바꿔 새로 시작했다고 한다. 실력이 꽤 좋았는지 아이디를 한 번 만들면 30승까지는 무난했다. 반에서도 ‘최고 고수’로 통했다.

중학교 때도 친구들과 PC방을 가는 게 주된 일과였다. 집에서도 1시간 공부하면 20분은 꼭 게임을 했다. 그러다 시험 기간에는 공부를 좀 더 했다. 어느 기말고사 기간엔 밀린 시험공부를 하느라 밤을 새운 뒤, 시험 끝나고 PC방으로 직행해 또 밤을 새우는 바람에 2박3일을 꼬박 깨어 있기도 했다고 한다. 이씨는 “집중해 열심히 공부한 뒤, 게임하면서 스트레스를 푼 셈”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요즘도 퇴근 후 고교 동창들과 스타크래프트를 하러 간다고 했다.

튀는 학생은 아니었다. 성적이 상위권이기는 했지만 전교 20등 안에 든 적은 없다. 서울에 살았지만 ‘대치동 키즈’도 아니었다. 고등학교 때는 학원에 안 다녔다. 중학교 때는 한두 군데 다니기는 했지만 당구장이나 PC방으로 몰래 새는 날이 많았다. “당시 내신 성적으로만 보면 경쟁률 높은 대원외고에 가기가 좀 어려웠습니다. 다행히 영어 면접을 잘 봤는지 합격했습니다. ”

고등학교 첫 중간고사에서 전 과목 평균 94점을 받고 내심 잘 봤다 싶었는데 중하위권이었다. 만점 가까이 받은 친구가 여럿이었다. “필기시험으로 그들을 이기기 어렵다는 걸 그때 본능적으로 알았죠. ‘안 된다’ 싶으니 빨리 포기하게 되던데요.”

이 덕분에 점수 경쟁이 심한 학교에 다니면서도 큰 부담이 없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해외 유학을 생각하게 됐다. 해외 대학은 GPA(내신 성적)와 SAT(미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일정 점수 이상 받기만 하면, 나머지는 운동이나 에세이 같은 비교과 요소를 중시하기 때문이다. 그는 “필기시험으로만 평가받았다면 유명 대학엔 못 갔을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스탠퍼드대 입학처장은 이씨에게 보내는 합격 통지서 하단에 ‘네가 쓴 한국 통일에 대한 에세이를 잘 읽었다. 꼭 꿈을 이루길 바란다’는 메시지를 적었다고 한다.

물론 대학 입학이 단순히 머리가 좋거나 비교과 활동만 잘해 얻은 결과는 아니다. 일단 ‘의미 있다’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죽기 살기로 매달렸다. SAT 응시를 앞두고선 6개월을 ‘시험에 미친 사람’처럼 살았다. 왕복 2시간 걸리는 통학 시간이 아까워 학교 앞 고시원에 방을 얻어 하루 14시간 공부만 했다. 시중에 있는 문제집이란 문제집은 모조리 구해 다 풀고 오답 정리까지 끝냈다. 그때 푼 문제집만 30권이 넘는다. 이씨는 “어머니께서 ‘그렇게까지 공부를 해야 하느냐’고 놀라실 정도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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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크래프트는 게임에 ‘제 3 세력’을 등장시킴으로써, 두 세력이 싸우는 기존 게임의 틀을 깼다. 이성원씨는 “요즘 우리 사회는 ‘보수 아니면 진보’로만 나뉘어 대립한다. 다양한 집단이 공존해야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스타크래프트의 철학’이 필요한 시대”라고 설명했다. /사진=김종연 C영상미디어 기자

◇CNN에서 본 ‘천안함 사건’에 무력감 느껴 해병대 입대

요즘 학생들처럼 일찍이 취업 목표를 세우고 공부를 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뭘 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기도 했다. 특별한 계획 없이 대학을 두 학기 휴학하고, 대학원 졸업 후엔 반년을 백수로 지냈다. 그는 “그런 점에서 사회가 원하는 전형적 모범생은 아니었다”고 했다.

미국 시민권자인 그가 해병대에 간 것도 애초 계획엔 없던 일이다. 스탠퍼드대 학부생이던 2010년, 학교 근처 술집에서 친구들과 맥주를 마시다가 미국 방송 CNN에서 천안함 피격 뉴스를 봤다. 한국이 일촉즉발(一觸卽發) 위기에 처한 상황을 보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 도울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데 무력감을 느꼈다. 해병대 출신인 아버지와 평소 군대 이야기를 하다가 농담 섞인 말로 “해병대에 가겠다”고 했던 게 떠올랐다. ‘이게 내가 할 일이다’ 싶었다. 그날, 입대를 결심했다. 입대에 앞서 미국 시민권을 버릴 때 큰 고민은 안 했다. 그는 “미국 시민권은 애초 내가 노력해 얻은 게 아니라서 그런지 포기하기가 쉬웠다”고 했다. 해병대 훈련을 받을 때 ‘내가 대체 왜 그랬을까’ 하고 후회한 적은 있다며 웃었다.

지난해 통일부 입사도 계획에 따라 착착 진행된 일은 아니다. 해병대에 있다 보니 군사 안보에 관심이 커졌다. 더 공부를 해보고 싶어 중위 전역 후 북한대학원대학교에 진학해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때 한국 사회에 통일 교육이 부족하다는 걸 알았다. 답답한 마음에 통일 안보 교육을 하지 않는 국제학교·외국인학교에 일일이 먼저 연락해 교육 봉사를 했다. 학교 측 반응이 좋았다. 그는 “저출산·경제 침체 같은 사회 문제를 통일이라는 전략으로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본다”며 “사회 곳곳에 이런 인식을 심는 데 힘을 보태고 싶었다”고 했다.

돌이켜보면 쓸모없는 일은 없었다. 어느 날 통일부 특채 공고가 뜬 걸 보고 흥미가 생겼다. “통일부를 겨냥해 미리 준비했던 것도 아닌데, 그간 해온 활동을 정리해보니 괜찮은 자기소개서가 됐습니다. 게임·봉사·입대도 모두 새롭게 의미가 생긴 셈이었습니다. 평가자도 아마 제 언어 능력이나 학력 외에 안보에 대한 관심이나 활동을 참고하지 않았을까요?”

부모는 이씨에게 ‘하라’ ‘하지 마라’ 하는 말을 한 적이 거의 없다. 어머니는 물론, 대학교 1학년 때 돌아가신 아버지도 그랬다. 한창 공부에 매진해야 할 시기에 스타크래프트를 낮이고 밤이고 하는데도 별 제재를 안 했다. “부모님께 ‘게임 좀 그만하고 공부하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어요. 게임을 취미나 개성으로 생각해주신 것 같아요. 지금에야 가끔 어머니께서 ‘그래, 네가 게임을 좀 많이 하긴 했지’ 하고 말씀하시지만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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