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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트리오맘의 ‘기본 충실 참육아'] 아이의 긍정적 태도는 사소한 것에서 시작된다

By글 이순영Posted2018.06.14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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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미국에 처음 왔을 때 사람들이 “안녕(Hello)!” 하고는 연달아 “오늘 기분 어때(How are you)?” 묻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모르는 사람에게 반갑게 인사를 하는 모습이 낯설었다. 대답도 뻔한데 왜 이걸 굳이 물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보통 대답은 “좋아” 이렇게 연결되니 말이다. 그런데 좀 살다 보니 이거 참 괜찮은 문화라고 느낀다. 사람을 마주칠 때마다 서로 웃으며 인사하고 근황에 대한 긍정적 답변을 주고받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혜민 스님의 책 ‘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 중에 이런 대목이 있다. ‘“오늘 기분이 어때?”하고 누가 물었을 때 뭐라고 대답할지 모르겠다면 바로 그냥 “아주 좋은데!”라고 답하세요. 그렇게 말하는 순간, 그때부터 기분이 아주 좋아지기 시작합니다.’ 누군가가 잘 지내느냐고 물어봤을 때 잘 지낸다고 대답하는 순간 내 삶이 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걸 보고는 큰 공감을 했다. 사실 미국에서는 이런 게 그저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지만, 이게 익숙지 않던 나는 이 효과를 직접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아침을 시작하는 순간에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웃으며 “좋은 아침!” 인사를 하고 “어떻게 지내?” “좋아!” 이런 대답을 하면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진다. 이런 걸 왜 안 하고 살았나 싶을 정도로 말이다. 조금 아는 사이라면 “오늘 옷 예쁜데!” “신발 사랑스럽다” 한마디 칭찬을 건네면 상대방은 물론이거니와 나도 즐거워진다. 서로 호감을 쌓는 것이 별것 아닌 데서 시작한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이렇게 따뜻한 미소로 반갑게 인사하는 데서 형성한 호감이야말로 관계를 시작하는 순조로운 첫 걸음이 된다. 긍정의 기운이 생겨난다.

한때 이곳 사람들은 공치사(空致辭)를 많이 한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사소한 것에 다 감사를 표하고 칭찬하는 게 영 익숙지 않았다. 그런데 살다 보니 이런 반응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됐다. 이곳 사람들은 긍정이 몸에 배어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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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은 아이들 학교에서 열리는 자선기금 마련 달리기 대회(Fun Run) 행사에 갔다. 실외 행사로 기획했는데, 비가 오는 바람에 급히 실내 행사로 변경해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누구 하나 인상 쓰거나 남 탓하는 사람 없이 “우리는 이런 상황에서도 융통성 있게 대처할 수 있어” 하면서 천천히 준비를 다시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행사를 진행했는데, 시간이 많이 미뤄지지 않고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코칸스키 교장 선생님은 “오늘 아침 정말 바빴지만, 우리는 결국 이렇게 해냈다”는 말로 행사 마무리를 했다.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고 책임을 묻고 질책하면서 우왕좌왕하느니 그 시간에 일단 일이 되는 방향으로 합심하고 “우리가 해냈어” 하는 편이 얼마나 멋진 결과를 이끄는지를 경험한 순간이다.

비슷한 경험이 또 있다. 높은 곳에서 계란을 깨지지 않게 떨어뜨리는 에그 드랍(Egg Drop)이라는 행사가 있는데, 이걸 아이들 학교에서 처음으로 시행했다. 아이들은 그룹별로 재활용 소품들을 활용해 내구성 있는 장치를 만들고 그 안에 계란을 넣어 던졌다. 행사가 끝나고 교장 선생님은 “올해가 처음이니 학부모들과 얘기를 나눠 보고 보완점을 찾아 내년엔 더 잘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모든 처음은 시행착오가 있기 마련이니까 말이다. 이때 이 사람들 특유의 여유를 느꼈다. ‘모든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러야 해’ 하는 마음보다 ‘이번에 많은 것을 배우고 더 나은 다음을 만들어야지’ 하는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이렇듯 긍정이 몸에 배어 있으면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을 긍정하게 된다. 이 사회를 만난 지 몇 년 되지 않았지만, 나는 내 일생 배우고 익혔던 긍정보다 더 많은 긍정을 배운 것 같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하루는 막내 채이의 프리스쿨(어린이집)에서 오언이라는 친구가 자석 블록으로 트럭을 만들고 놀고 있었다. 다른 한 친구가 테이블에서 장난감 병정을 가지고 놀다가 죄다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옆에 있던 오언이 “이렇게 하면 쉽게 정리할 수 있어요” 하고 블록을 자기 트럭에 담았다. 그러자 주변 친구들도 트럭 안에 장난감 병정들을 함께 주워 넣었다. 그러는 통에 자석으로 만든 트럭이 부서졌다. 그때 오언의 반응이 참 인상 깊었다. “괜찮아. 나 이거 다시 만들 수 있어. 내가 만드는 방법을 알아” 하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만드는 것이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네 살짜리 아이가 참 긍정적이네. 어떻게 살면 행복하게 사는지를 벌써 잘 아는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짜증을 낼 수도 있었는데 “괜찮아! 다시 만들면 돼!” 이런 방향을 택한 것이다. 이처럼 긍정은 사람 관계를 안전하게 하는 장치가 된다. 나는 미국에 와서 사귄 친구들 때문에 감정이 상하거나 다친 적이 한 번도 없다. 정말 그게 늘 신기해서, 한 번은 아이들에게 미국 친구들과 사귀면서 기분 상했던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아이들은 그런 적이 없다고 했다. 미국 친구들은 늘 기분 좋게 해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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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에게 건네는 웃음 같이 아주 작은 것에서 친밀감은 시작된다. 상대방과 친밀감이 생기면 서로 긍정적인 반응을 주고받을 수 있고, 이는 생명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된다. 가족 치료사 버지니아 사티어는 어른인 우리도 생존을 위해서는 적어도 하루 4번 이상의 포옹이 필요하다고 했다. 일반적인 삶을 유지하려면 하루 8번, 성장하려면 12번의 포옹이 각각 필요하다고 했다. 지인을 반갑게 안을 때의 긍정적인 기운은 기분 좋은 하루를 만드는 에너지원이 된다. 하루의 행복을 만드는 것은 대단한 게 아니다.

부정이 몸에 밴 사람이 있다. 접하는 모든 것에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이들이다. 그런 사람은 한 해가 지나 만나도 여전히 부정적인 태도로 상대방을 불편하게 한다. 사람이 아무리 착해도 태도가 부정적이면 곁에 있기가 어렵다. 반면 사람이 밝고 긍정적이면 곁에 있는 시간이 행복해진다.

사실 긍정적인 삶이 아주 대단한 것도 아닌데, 마치 내 일이 아닌 듯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어렵게 생각하기 때문에 어렵게 여겨지는 것일 뿐이다. 조금 더 쉽게 긍정을 이야기하고 실천하려 한다면, 그 앞에는 무수한 긍정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글 이순영(ladakh1@naver.com)
글을 쓴 이순영씨는 현재 미국에서 삼 남매를 키우고 있다. 잘 나가던 대치동 학원 강사였던 그는 ‘내 아이는 성적이 우수한 아이로 키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육아를 시작했다. 그러나 육아가 공부 잘하는 아이로 기르는 것만 뜻하는 게 아니라는 뒤늦은 깨달음을 얻고 자신과 가족의 심리를 들여다보며 다시 아이 키우는 공부를 시작했다. 이를 바탕으로 ‘엄마 성장 육아’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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