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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박승혜의 소신 육아] “엄마, 몇 시에 데리러 올 거야?”

By박승혜 베이비조선 객원기자Posted2018.06.12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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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도록 누리고 싶던 호시절이 생각보다 빨리 저물었다. 둘째가 어린이집에서 낮잠을 자지 않겠다는 ‘도시락 폭탄’과도 같던 선언 이후부터다. 요즘은 어린이집에서 낮잠을 재우려는 나와 낮잠을 자지 않으려는 딸아이와의 팽팽한 기 싸움으로 아침을 시작한다. 이 덕분에 어린이집 앞에서 보통 3월에 일어나는 엄마와 아이 실랑이 풍경을 6월이 된 지금에야 보이고 있다.

“엄마 몇 시에 데리러 올 거야? 낮잠 안 자고 싶어.”

“오늘은 낮잠 자고 3시에 만나자.”

협상에 실패한 딸아이는 결국 마지막 무기인 눈물을 꺼내 든다. 결국 원장님을 필두로 반 선생님과 아이들까지 총출동해 딸을 데리고 들어간다. 그러면 나는 문밖까지 흘러나오는 울음소리를 등에 콕 박으며 집으로 돌아온다.

아이는 3주 전부터 당혹스러울 정도로 어린이집에서 울었다. 선생님에게 눈물이 툭 터지기 직전인 홍시 같은 얼굴로 “엄마가 보고 싶어요”라고 자주 말했다. 딸이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처음에는 아침마다 단거리 선수처럼 어린이집에 뛰어가는 열혈 원아였다. 그랬던 아이가 지금은 180도 바뀌었다.

가장 큰 문제는 낮잠 시간이었다. 보통 어린이집 5살은 낮잠을 재운다. 점심을 먹고 난 후 1시간 반 동안 이어지는 낮잠 시간을 딸아이는 힘들어했다. 처음에는 멋모르고 자야 하는가 보다 했다. 부끄럼 담당인 딸은 말은 못하고 긴 시간 동안 오지 않는 잠을 청하며 이리 뒤척, 저리 뒤척했다. 결국 남들 다 자고 일어나는 시간에 10~20분 눈을 붙였다. 시간이 흘러 일찍 가는 친구, 잠을 자지 않고 다른 활동을 하는 친구가 생겨났다. 딸아이는 꾹꾹 참다 결국 낮잠을 자지 않겠다는 선언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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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에서는 억지로 낮잠을 재우지 않는다. 다만 친구들이 잘 수 있도록 처음에는 함께 누워 분위기를 조성한다. 얼마간 시간이 지나면 낮잠을 자지 않는 아이들은 일어나 다른 활동을 한다. 딸아이는 대체로 색칠 공부를 한다. 하지만 색칠 공부도 하루 이틀이지 한 시간 동안 앉아 공주들을 쭈르륵 색칠하고 있노라면 지겨울 듯싶다. 불을 끈 교실에서 색칠하면 아무리 낮이라 해도 눈이 나빠지지 않을까 하는 내 걱정도 더해졌다. 눈치 백단 딸은 이런 내 마음을 눈치 채고부터 적극적으로 낮잠 거부 투쟁을 하다가 급기야 점심 먹고 바로 엄마가 데리러 오길 요구했다.

아침마다 승강이를 벌이고 있자니, 어떻게 해서라도 유치원에 보냈어야 했나 싶었다. 4살 후반부터 징징대며 낮잠을 이겨내는 능력이 생긴 딸. 그래서 5살부터는 낮잠을 재우지 않는 유치원을 보내려 했다. 하지만 일단 괜찮다 하는 유치원은 대기가 길었다. 추첨하는 아파트 단지 내 유치원은 당첨 확률이 30대 1 수준에, 40만원이라는 거금의 원비가 들어갔다. 나머지 유치원은 10분 넘게 차를 타고 가야 했다. 결국 가깝고 비용 적게 드는 단지 내 어린이집에 보냈던 거다.

그동안 유별난 투쟁 조짐이 있었던 건 아니다. 어린이집 앱에 올라오는 사진을 보면 세상 열심인 딸아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체육 시간에는 신나게 허리 돌리는 모습이, 영어 시간에는 얼굴 뻘게지도록 대답하는 모습이, 오르프 음악 시간에는 선생님 말씀에 초 집중하는 모습이 보였다. 선생님께 지나가듯 엄마 보고 싶다는 말을 했을 뿐이었다.

지금 이 시기가 아이를 기다리며 다독여줘야 할 때인지, 불도저처럼 강하게 밀고 나가야 할 때인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일단은 마음 강하게 먹고 몇 번의 낮잠을 강행해 봤다. 그러자 아이는 아예 어린이집을 가지 않겠다는 초강수를 뒀다. 어이쿠. 성격 급한 내가 너무 밀어 붙였다. 왔던 거리보다 더 멀리 후진했다. 그래서 요즘은 점심 먹고 난 직후인 오후 1시에 데리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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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초에는 아이가 훨훨 날 준비가 됐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일로 딸은 여전히 엄마 손길과 사랑이 넘치도록 필요한 ‘아이’임을 다시금 생각하게 됐다. 아이 뒷모습만 봐도 혼자 히죽거리며 웃었던 때가 언제였던지, 아이에게 넘치는 뽀뽀를 퍼부은 때가 언제였던지, 아이가 말할 때 집중해 듣고 맞장구쳐준 때가 언제였던지. 오랜만에 찾아온 천국 같은 자유 시간에 열과 성을 다하다 보니, 그만 그 순간들을 잊고 있었다.

바로 관심 집중 모드로 전환했다. 다행히 요 며칠, 강한 거부 없이 어린이집에 간다. 신(神)이 주신 기회라 생각하며 오랜만에 가져보는 둘만의 오붓한 오후 시간을 일단 잘 보내야지. 낮잠은 기회를 봐서 다시 도전! 생각해보니 지금은 아침마다 손 하트 날리며 씩씩하게 학교 가는 첫째도 7살 후반이 돼서야 즐겁게 엄마와 떨어져 다녔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아직 3년이란 시간이 남았는데 급하게 달려가지 말자 싶다. 아이 덕분에 주어진 단 몇 시간에 내 하루 일정을 꾹꾹 눌러 담고 있다. 숨 고를 틈 없이 알뜰한 삶을 살게 해줘서 감사하다 웃어야 할지, 팍 쪼그라든 내 자유 시간을 돌려 달라 울상 지어야 할지 고민인 요즘이다.

박승혜 베이비조선 객원기자(mercyup@naver.com)
글을 쓴 박승혜 객원기자는 5세, 8세 두 아이를 키우는 동시대 육아맘이다. 출산할 때 척추 무통주사 대신 라마즈 호흡법을 활용하고,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아이를 위해 카시트를 앞 보기로 바꾸는 등 소신 있는 육아를 하고 있다. 그는 아이들이 책을 통해 세상을 배우고 좋은 인성을 갖췄으면 하는 마음으로 ‘성품 독서지도사’ 자격증을 취득했으며, 책 육아와 성품 육아에 집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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