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영국 미술교육 이야기

아이들 간 갈등, 부모가 중재해야 할까?

By고현수 베이비조선 영국통신원Posted2018.04.25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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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가족과 영국 북부도시 요크를 여행 중이다.
아이와 얘기하다가 요즘 단짝 친구 샘과 점심시간에 같이 앉지 않는다는 얘기를 들었다. 깜짝 놀라 이유를 물었다.

“샘은 라드빈에 대해 좋지 않은 얘기를 해. 그건 사실이 아니란 말이야. 자기하고만 놀라고도 해.” 어렸을 때부터 친했던 라드빈과 새로 사귄 샘 사이에서 아이는 불편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런 말해도 돼?” 내 얼굴을 살피며 도헌이가 물었다. 언짢은 마음이 표정에 드러났나 보다. 이 상황이 누군가를 속상하게 할 수 있다는 점부터 친한 샘 엄마와의 관계까지 떠올리니 모두에게 조금 더 행복한 결말이 되도록 조정해줄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특별 간식을 만들어 같이 놀게 할까 아이디어도 떠올랐다. 하지만 아이들 나름의 갈등을 풀지 않은 채로 무조건 “친하게 지내”라는 메시지를 주는 건 아닌지 확신할 수 없어서 일단 입을 다물었다.

예전엔 아이들은 그냥 같이 뛰어놀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키우다 보니 남자아이 여자아이 할 것 없이 크고 작은 갈등을 피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됐다. 우리 아이는 삼각관계의 중심에 서기도, 밀려나기도 한다. 그 상황을 보는 엄마의 감정은 복잡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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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크 여행을 통해 아이들이 부쩍 친해졌다.
◇갈등은 정상이다?
도헌이의 학교 선생님은 “지금 도헌이 또래 아이들은 친한 친구에게 애착을 가지는 법을 배우고 있어요. 서로 중요한 관계라서 갈등이 생기는 거죠”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장난감 때문에 싸우던 아이들이 점점 관계를 생각하게 되면서 여러 시도를 해보다가 갈등이 생겨요. 겪어봐야, 잘 처리할 수 있어요.”

그러고 보니 영국 엄마들과 있을 때 아이들 간에 갈등이 생겼던 날이 기억났다. 평소 단호하게 상황에 대처하는 영국 부모들이 친구 사이의 갈등에 대해서는 “그랬구나” 하고 두고 보는 것이었다. “탐이 월·화·수에만 놀아준다고 해서 소니가 집에 와서 울었어요” 하고 다른 엄마가 미처 몰랐던 사실을 알려주면서도 “너희 친하게 지내야지. 서로 사과해” 하고 말하지는 않았다. 부모가 보는 상황이나 관점이 항상 객관적이지는 않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아이들에게 “이렇게 하라”고 지시하는 일을 자제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곤 했다.

아이의 인간관계에 대해 조심하는 게 있느냐는 질문에 친구 엄마는 말했다. “‘아이의 친구’와 ‘엄마의 친구’를 분리하는 거예요. 저랑 제일 친한 친구에게도 아이들이 있고, 한 번에 다 같이 모여 놀면 편하죠. 하지만 의식적으로 아이들이 좋아하는 다른 친구들을 따로 날을 정해 놀러 오게 해요. 제 친구 아이들이 곧 제 아이의 친구들은 아니라는 걸 기억하려고요.” 이야기를 들으며, 엄마가 지켜보는 가운데서 엄마 친구 아들 딸과 노는 것이 때로 ‘놀이’가 아닐 수 있다는 생각도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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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팀별로 레고 쌓는 수업에 부모들도 참여했다.
◇“좋아할수록 친절해야 해”
겪어봐야 잘 처리할 수 있다는 말에 공감하지만, 좌충우돌하기 전에 살살 부딪쳐보는 방법이 있으면 좋겠다. 유치원에 가기 싫어하던 시절에 비슷한 상황을 다룬 책을 읽어주며 다음 날을 준비했던 것처럼, 이번에는 ‘커들리(포근이)’라는 곰돌이를 이용해 상황극을 해보기로 했다. 낮에는 “그 얘기는 안 할래” 하던 아이도 잠자기 전에 스탠드를 켜고 ‘개인적인 시간’을 가지면 마음속 이야기를 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놀이를 하다가, 문득 커들리가 말했다. “내 친구 테드가 요즘 다른 친구랑만 노는 거 있지. 그래서 너무 속상해.”(커들리) “커들리는 자기 마음대로 안되면 계속 짜증을 내.”(테드) 그러자 아이가 진지한 눈으로 말했다. “테드, 커들리가 계속 화를 내면 ‘그러지마’ 라고 말해.” 이어 말했다. “커들리, 너 테드가 좋지? 좋아할수록 친절해야 해.” 그런 충고는 어디에 숨어 있었을까?

조금 더 개인적인 이야기를 꺼냈다. “내일 샘에게 같이 앉자고 물어보면 어때?” 아이는 잠깐 생각하다가 “샘하고 놀면, 라드빈한테 좀 미안한데”라고 말하다가 “샘이 라드빈하고 못 놀게 하는 게 옳지 않은 것처럼, 샘을 제외하는 것도 별로 좋은 생각은 아닌 것 같아”라고 했다. 모든 문제가 녹아버린 건 아니었지만, 내일 일어날 수 있는 일에 대해 친구가 느낄 감정을 생각해보는 연습으로는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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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호가스(William Hogath)의 1742년 작(作)인 ‘그래험가 아이들(The Greham Children)’, 내셔널 갤러리 소장.
◇그림 같이 예쁜 아이?
오랜만에 아이를 데리고 친구와 테이트모던 미술관에서 만났다. 이날따라 아이는 전시장 안에서 강렬한 에너지를 발산했다. 겨우 앉은 커피숍에서도 도헌이는 계속 “집에 언제가?” 하거나 친구의 아이에게 친절하게 대하지 못했다. 친구는 결국 불편해하는 듯 보였다. 민망하기도 해서 “평소엔 그러지 않는데”라고 변명하고 싶었다. 집에 오면서 “왜 그랬어?” 하고 다그치고 싶었다. 하지만 원만한 예쁜 아이가 돼주기를, 안 되면 그런 모습을 연기라도 해주길 바라는 내 마음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한 예술 작품은 많지만, 다투고 심통 난 모습을 그린 그림이 별로 없는 건 왜일까? 아이들은 그림 같이 조화를 이루는 순간보다 다투고, 울고, 질투하고, 화해하는 시간이 훨씬 더 긴데 말이다. 윌리엄 호가스의 ‘그래험가 아이들’이라는 작품에는 큰딸부터 막내까지 손님에게 인사라도 하듯이 예쁘게 서 있는 모습이 묘사돼 있다. 그러나 부모라면 이 모습은 잠시일 뿐이라는 걸 안다. 아이들은 이내 움직이고, 옷을 더럽히고, 싸우고, 울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 자연스러운 움직임과 건강한 갈등을 생략해 ‘보는 사람’에게만 예쁜 그림을 그린 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아이가 앞으로 계속 겪을 상황에 엄마인 내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선 안 된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엄마, 오늘 미술관에서 화났던 거, 괜찮았어?” 내 표정을 살피는 아이에게 말했다. “생각해봤는데, 이건 엄마가 괜찮고 안 괜찮은 문제가 아니라 도헌이가 배워야 할 문제인 것 같아. 다음번에 지루하고 피곤할 때 어떻게 행동하면 더 좋을지 생각해보자.” 아이를 지적하는 ‘감상자’보다는, 아이가 겪는 과정을 지지해주는 ‘조력자’가 되고 싶으니까 말이다.

고현수 베이비조선 영국통신원 (hyunsookoh@gmail.com)
글을 쓴 고현수는 성곡 미술관과 오페라 갤러리에서 전시기획 및 큐레이터로 일했으며 결혼 후 영국으로 이주해 런던 유씨엘 대학에서 박물관, 미술관 교육학을 공부했다. 현재 가장 큰 관심사는 ‘아이와 함께 가는 박물관, 아이와 함께 즐길 수 있는 박물관’이다. 주말이면 색연필 통 하나 열어놓고 하루 종일 미술관에서 노는 많은 영국아이들처럼, 내 아이가 박물관과 평생 좋은 친구가 되기를 바라며 함께 박물관 나들이를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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