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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소통전문가의 상담실 속 이야기]부모 과보호가 자녀 자존감 떨어뜨린다

By글 김진미Posted2018.04.19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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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하는 동안 안 받았더니 문자가 100통은 온 거 같아요.”
교육이 끝나갈 무렵 미란씨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제가 집을 비우면 애가 이렇게 전화를 하고 문자를 한답니다. 제가 오늘 교육 있다고 말을 하고 왔는데도 그래요.”
미란씨의 딸 은서는 초등학교 4학년이다. 엄마보다 친구가 좋을 나이가 됐는데 은서는 늘 엄마를 찾는다. 겁이 많아서 혼자 집에 있지 못한다. 밤이 되면 불을 켜둬도 자기 방에 혼자 들어가지 못한다.

미란씨의 부탁으로 상담실에서 은서를 만났다.
“나는 엄마의 인생을 살고 있어요. 내가 내 인생을 사는 것 같지가 않아요.”
은서가 이렇게 말했다. 12살 아이의 입에서 나올 법한 말이 아니다. 엄마에게 매달리는 어린아이 같을 것이라는 선입견과 달랐다. 은서는 나이에 비해 성숙했다. 키도 크고 태도도 의젓했다.

은서는 자기 멋대로 행동하는 친구가 부럽다. 친구는 위아래 색깔이 안 맞는 촌스러운 옷을 입고, 옷과 어울리지 않는 이상한 머리핀을 하고 다닌다. 그런데도 당당한 그 아이가 왠지 멋있어 보인다. 한 번은 친구 집에 놀러 갔다. 친구가 라면을 끓여 먹자고 했다. 친구는 모든 일을 척척 해냈다. 친구가 부러워서 집으로 돌아와 한참을 울었다고 했다.

“나는 엄마 인생을 사는데, 애들은 자기 인생을 사는 거잖아요. 나는 엄마가 머리를 묶어주고, 엄마가 주는 옷을 입고, 엄마가 다 해줘요. 나는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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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서는 이렇듯 수준 높은 말을 하는 어른스러운 면을 지녔다. 그러나 정작 무서워서 혼자 자기 방에 들어가지도 못한다. 불안해서 엄마의 곁을 벗어날 수 없다. 밤이 되면 엄마에게 간지럼을 태워달라고 하면서 아기 흉내를 낸다. 인형을 줄지어 세워놓고 엄마에게 아가 역할을 하라고 졸라댄다. 사고나 학습 수준이 떨어지지도 않았다. 자존감이 지독히 낮은 경우였다. 아이의 내면에는 불안한 어린이가 자리하고 있었다.

이유는, 미란씨의 삶이 아이와 밀착돼 있기 때문이었다. 미란씨는 늦게 낳은 딸을 잘 기르려고 열심을 다하고 있었다. 딸의 모든 일상이 궁금했다. 아이의 소소한 문제나 감정까지 묻고 해결해줬다. 그럴수록 아이는 작은 일도 엄마에게 의존했다. 혼자 생각하고 판단하는 데 두려움을 느꼈다. 엄마는 아이가 할 일을 모두 대신해줬다. 실수하면서 배울 기회를 주지 않았다. 아이가 자신을 믿을 수 없게 했다. 엄마에게 매달리고 세상으로 나가지 못하게 했다.

아이를 완벽하게 돌보는 것은 최선을 다해 아이를 꼭두각시로 만드는 것이다. 이런 유형의 엄마들은 대개 불안하다. 아이가 실패할까 봐 걱정한다. 실수를 미리 막아준다. 힘든 일을 대신 처리한다. 아이는 엄마라는 안전지대에 갇힌다. 엄마를 벗어나 도전지대로 나아가야 하는데 아이는 두렵다. 엄마의 꼭두각시가 되는 길을 선택한다.

꼭두각시가 된 아이들은 열등감에 시달린다. 자신의 능력으로 무엇인가 이룬 경험이 없기에 스스로를 과소평가한다. 자신감이 없다.

많은 연구 결과에서 부모의 과보호 아래 자란 아이는 끈기·독립심·자립심· 회복탄력성·문제해결능력 등에서 낮은 점수를 받는 것으로 나타난다. 대인 관계와 사회생활에도 어려움이 있으며 끊임없는 자극과 오락을 필요로 한다. 스트레스·섭식 장애·과소비·우울증에도 취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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든든한 사랑으로 자녀를 돌보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분리와 독립을 돕는 것이다. 부모가 언제까지나 아이를 보호해 줄 수는 없다. 세상은 불공정하고 때로 위험하다. 자신의 삶을 개척해갈 수 있으려면 어려서부터 도전과 실패를 경험해야 한다. 개입하고 간섭하고 싶은 욕구를 누르고, 독립을 응원해야 한다.

미국 콜로라도대 연구진의 논문에 의하면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간섭하는 헬리콥터 부모를 둔 아이는 대뇌 실행 기능이 헬리콥터 부모를 두지 않은 아이보다 현저하게 떨어졌다. 난관에 부딪혔을 때 과보호를 받은 아이들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였다. 주의력 집중 장애와 과잉행동 장애 비율도 높았다.

한 소년이 나비가 고치에서 나오려고 애쓰는 것을 봤다. 나비가 힘들어하는 것을 보니 나비를 도와주고 싶었다. 그래서 고치를 벗겨서 나비를 꺼내줬다. 하지만 이상했다. 나비가 훨훨 날아갈 줄 알았는데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나비가 날아가려면 먼저 고치에서 벗어나려고 애쓰는 과정을 통해 힘이 길러져야 한다. 소년은 그것을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이다.

“아이들이 자신의 삶을 살도록 하는 것은 거친 세상에 풀어놓거나 버리라는 게 아니다. 다만 아이는 부모의 야심을 위한 창고가 아니며 부모가 완수해야 할 프로젝트도 아님을 인정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자기 취향과 즐거움, 삶의 경험을 지닌 개별적이고 유능한 존재다.” 파멜라 드러커맨은 그녀의 책에서 말했다.

이제 아이에게서 한발 물러설 준비가 되었는가?

지나친 개입과 간섭을 멈추자. 아이가 날기 위해 힘을 기르고 있을 때 그 과정을 엄마가 대신해준다면 아이는 영영 날 수 없는 나비가 된다. 아이가 날 수 있도록 거리를 두고 지켜보자. 엄마라는 안전지대에서 벗어나 세상이라는 도전지대로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자.


글 김진미(빅픽처 가족연구소 대표,bigpicturefamil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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