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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박승혜 기자의 소신육아]8년차 며느리의 우아한(?) 명절 보내기

By박승혜 객원기자Posted2018.02.09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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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후 8년째 명절을 맞는다. 연차로 보면 요령 있게 매번 돌아오는 명절에 적응했을 법하지만, 여전히 시댁에서 명절을 보내고 돌아오는 길엔 몸과 마음이 힘들다. 변한 건 부부 싸움 정도가 ‘이혼하느니 마느니’ 하던 수준에서 ‘이런 점이 서운했다’는 감정을 내비치는 선에서 마무리된다는 거다. 이제는 차 안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 크게 싸울 필요가 없다는 걸 알았다. 감정은 해소된 건 아니다. 그저 ‘명절 증후군’이란 퇴적층이 돼 마음 깊숙이 가라앉았을 뿐이다. 


남편과 7년 연애 끝에 결혼했다. 서로 잘 안다고 생각한 나머지, 남편이나 시댁과 큰 문제가 없을 거란 순진한 착각을 했었다. 하지만 결혼하자마자 연애한 세월이 무색할 만큼 때로는 남편 때문에 때로는 시댁 때문에 숱하게 싸웠다. 며느리를 기존 가족에 더해진 구성원 한 명으로 보는 시부모님 생각과 결혼을 하나의 독립된 가정을 이루는 과정으로 보는 며느리 생각이 부딪쳤다. 이견을 좁히기가 어려웠다. 남편과 나는 ‘이번 생에 결혼은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갈등이 자주 일어났다.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지만, 평소보다 오랜 시간 부대끼는 명절에는 상처가 될 줄 모르고 주고받는 말에 그동안 쌓인 감정까지 더해 전쟁 같은 시간을 보냈다. 요즘 명절을 떠올리면 가슴이 답답하고 온몸이 긴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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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나는 명절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한복 입고 세배 다녔던 일, 밤새 불꽃놀이 했던 일, 성묘 갔던 일은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 큰집이라 상 차리는 일에 동원됐지만, 오랜만에 보는 친척들과 도란도란 밥 한 끼 먹는 게 좋았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즐거운 명절 기억을 많이 남겨줘야겠다는 생각이 지금에야 든다. 그래서 올해는 나부터 ‘우아한 명절’을 보내야겠다는 용감한 결심을 했다. 혹자에겐 우아한 명절이라 하면, 시댁에 가지 않거나 시댁에 잠깐 들렀다 여행 가거나 쇼핑하고 맛난 음식을 먹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게 우아한 명절이란 ‘나’란 고귀한 존재 가치를 잃어버리지 않으면서, 어릴 적 명절처럼 그 시간을 행복하게 누리는 거다. 그래서 몇 가지 방법을 생각해냈다.

먼저 내가 좋은 마음으로 할 수 있는 선까지만 일하기로 했다. 새댁이었을 때는 ‘A급 며느리’가 되고자 고군분투했었다. 없는 요리 솜씨 뽐내고, 어색하지만 “아버님~ 어머님~” 살갑게 불러 가며 이리저리 신경 썼다. 친정 가서는 착한 딸이자 착한 조카임을 입증하려고 제사와 명절 음식 준비와 뒷정리로 잔류 체력 1%까지 써버렸다. 물론 명절 끄트머리에는 다 부질없는 일임을 알았다. 이번에는 사서 고생하면서 불평불만 쏟아내는 일은 그만하기로 했다. 그 대신 내 체력과 마음이 허락하는 데까지 우리 가족을 위해 기꺼운 마음으로 상을 차리고 설거지를 하기로 했다. 

두 번째는 내 목소리 내기다. 어린 시절 국민학교 때부터 전을 지져왔고 부엌을 떠날 줄 모르던 엄마와 작은 엄마를 보며 자랐기에 명절에 여자들만 종종거리며 일하고 남자들은 따뜻한 아랫목에서 술상 받아가며 이야기꽃 피우는 모습에 큰 불편을 느끼지 않았다. 시댁 어른들의 예쁨을 받고 싶었던 결혼 초에도 그게 별문제라 생각하지 않았다. 며느리로서 의무(?)를 당연히 해야 하고, 상처가 되는 말을 들어도 그저 흘려보내면 된다 생각했다. 그러던 중 지난 추석 후 아버님과의 통화가 나의 안일한 생각을 깨뜨렸다. “이번 추석 때 고생했다. 며느리들은 다 그런 거야”라는 아버님 말에 뱃속에서 뭔가 꿈틀했으나 괜히 이런저런 말을 했다가 관계를 악화시키기 싫어 “네~” 하고 대답했다. 전화를 끊고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그래서 이번 명절에는 지혜롭게 내 목소리를 좀 내려고 한다. “어머. 요즘은 안 그래요, 아버님~” “여보. 운전 반반하고, 가서 일도 반반 나눠 하자”라고.

세 번째는 착한 며느리 콤플렉스 버리기다. 어릴 때부터 ‘착하다’는 칭찬이 최고인 줄 알고, 그런 말을 들어야 잘 사는 인생인 줄 알았다. 어떻게 보면 ‘착하다’는 다른 사람의 기준과 마음에 들어야 ‘하사받는’ 단어다. 나는 시댁에서 착한 며느리로 인정받고 싶었다. 하지만 착한 며느리가 되기 위해 참아온 내 눈물과 아픔은 세월이 지나도 보상받지 못했다. ‘세월 지나다 보면 괜찮아지겠지’ 했지만, 여전히 불편함이 드는 건 내 문제일까? 이제는 상처투성이 착한 며느리 대신 쿨내 진동하는 ‘쿨한 며느리’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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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행복한 명절을 향한 여정은 쉽지 않다. 용기 있게 변화를 시도해봤자 전쟁 같은 명절이 계속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행복한 명절을 즐기는 나를 조금씩 되찾고 서로 불편을 느끼지 않는 최선의 접점을 더듬어가다 보면 그 어느 날, 비로소 우아한 명절을 보내는 우리 가족을 보게 될 거라 한껏 기대해본다.

박승혜 베이비조선 객원기자(mercyup@naver.com

글을 쓴 박승혜 기자는 실제로 3살, 6살 두 아이를 키우며 현실적인 육아 정보들을 찾아나가는 동시대 육아맘 기자다. 척추에 무통주사를 맞는 게 무섭다면 라마즈 호흡법이 대안,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아이는 카시트를 앞 보기로 바꿔주면 좋다 등 아이 둘을 키우며 서툴렀던 육아에 소신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녀는 아이들이 책을 통해 세상을 알아가고 좋은 인성을 품었으면 하는 마음에 ‘성품 독서지도사’ 자격증을 취득, 현재 가정 보육을 하며 책 육아, 성품 육아에 열혈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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