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영국 미술교육 이야기

미술관에서의 ‘넛지’: 아이의 생각을 살며시 일깨우다

By고현수 베이비조선 영국통신원Posted2018.01.22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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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하는 아이 만들기 프로젝트

새해 해야 할 리스트가 생겼다. 샤워 후 귀 위에 하얀 거품을 달고 나오는 우리 아이가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게 하는 것. 혼자 목욕하기, 혼자 잠들기, 학교에 갈 준비하기. 그동안 이런 기본적인 일에도 급하면 나도 모르게 손이 나가 아이를 도와줬다. 그러나 둘째를 가지고 나니, 당장 도와주는 것보다도 스스로 하는 습관이 더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아이는 내 맘 같지 않다. 옷을 갈아입으라는 엄마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장난감을 가지고 놀면서 “잠깐만”을 반복한다. 그러면 엄마는 결국 “지금 바로 해”라며 날카로운 소리를 내게 된다. 놀란 듯 움직이는 아이를 보면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도 든다. 행동의 결과를 알려주려고 “학교에 늦게 되고, 그러면 선생님이 걱정하게 돼”라고 말해보지만, 아이는 비밀이라도 알려주듯이 “엄마, 친구들이 늦을 때도 선생님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아”라고 말한다.

자발적인 아이, 자기주도적인 아이. 학습뿐만 아니라 아이의 인생을 위해서도 아이가 스스로 하도록 기다려줄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지만, 한편 엄마는 삶에 꼭 필요한 책임감이나 계획성을 가르치지 않을 수 없다. 송아지가 끌려가듯 배울 수밖에 없는 것일까? 이럴 때 엄마의 강압적인 목소리도, 긴 설명도 참 부족하기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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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은 싫어

다른 일로 스위스의 바젤에 방문하게 되었지만, 도시를 돌아볼 하루의 시간이 생겼다. 바젤은 40여 개의 박물관이 밀집된 박물관 천국이지만, 신중한 마음으로 한 군데를 꼽았다. 바로 움직이는 예술(키네틱 아트)을 선보였던 장 팅겔리의 미술관. 아이에게 생각보다도 더 넓은 예술작품과 그 자유로움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래를 부르며 걸어오던 도헌이는 ‘팅겔리 미술관’이라고 쓰여 있는 빌딩을 보자마자, “미술관 싫어!”라고 말했다. 작은 다리로 버티고 서 있는 아이를 보면서 이 ‘싫어!’를 받아들이고 혼자 들어가야 하나, 아이에게 긴 설득을 해서라도 이 독특한 작품들을 보여줄까, 또 같은 고민에 망설이게 됐다.

그때, 도헌이가 뭔가를 발견하더니 미술관 쪽으로 달려갔다. 바로 마당에 정신없이 움직이며 물을 뿜어내는 분수. 장 팅겔리가 닥치는 대로 노력하고 애쓰는 인류의 모습을 움직이는 기계로 표현한 작품이다. “팅겔리는 그림을 꼭 종이에 물감으로 그려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어. 대신 자기만의 예술적인 생각을 담은 기계들을 발명했어” 이때다 싶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나는 말했다. “우리도 들어가서 보기만 하는 게 아니라 직접 작동하면서 감상하는 거야!” 이내 아이의 눈에 호기심이 켜지고, 이끌리듯 미술관 입구로 들어서는 뒷모습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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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듀처럼, 스위스적인 미술관

들어오자마자 오디오 투어를 찾았지만, 사람이 안내하는 그룹투어는 있어도 오디오 가이드는 없다고 했다. 처음에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각 가지 언어로 되어있는 오디오 투어 헤드폰만 씌워주면, 아이가 심심하다는 말할 새 없이 아주 편리하기 때문이다. ‘그림 오른쪽 위에 보이는 비둘기는 이런 뜻입니다’를 꼬집어 설명해주는 오디오 가이드는 먹기 좋게 발라 놓은 생선과 같지만, 대신 스스로 이해해 보려는 노력이 적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생소한 설치작품 위주라, 호기심을 가지고 다가가 봤다. 우연히 페달을 밟아 윙-하고 작동되는 헤어 드라이기 작품에 깜짝 놀라고는, 작품의 버튼이나 레버를 먼저 찾아내려고 아이와 나 사이에 경쟁이 붙기도 했다.

‘이렇게 보세요’라는 개입이 최소화됐다는 점에서, 팅겔리 미술관은 스위스 전통 음식 퐁듀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스와 재료는 정해져 나오지만, 얼마만큼 찍을지, 다음에 무엇을 먹을지, 퐁듀에는 자유로움이 있었다. 미슐랭의 권위나 매너도 필요 없다. 사실 좋아하는 맛이 아닌데도, 도헌이가 빵을 소스에 넣고 또 건져 한입 가득 먹으며 즐거워한 기억이 났다. 주도적으로 해 보는 맛이란 그렇게 좋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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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스 맥시-맥시-맥시 유토피아(1987), 스위스 바젤의 팅겔리뮤지엄 소장
자동 그림 기계

장 팅겔리의 초기 작품인 ‘그림 그려주는 기계’. 예술가가 직접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라 공장처럼 그림을 그리는 기계를 창조한다는 생각이 신선했던 작품. 기계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색을 고르느냐, 얼마나 작동시키느냐에 따라 매번 새로운 추상화를 그려낸다. 미술사 책에서 보던 작품을 대하고는 잔뜩 기대하며 색색의 사인펜을 꽂고 작동시키자, 기계는 소리를 내며 철로 된 팔을 몇 번 움직이더니 멈췄다. 사인펜은 다 말라서 색이 나오지도 않아, 그야말로 낙서가 완성됐다. 거장 팅겔리의 기계가 그린 그림을 보고 우리는 배를 쥐고 웃었다. “너무 못 그린다” 도헌이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밀린 그림일기를 그릴 때 이런 기계를 썼으면 어땠을 거 같아?” 즉시 몇 장이라도 다른 그림을 그려내겠지만, 아무 재미도 열정도 없이 생산된 그림은 ‘일’에 불과할 것이었다.

아이를 움직이게 하는 동력
이른 아침, 도헌이가 작은 발소리로 들어와서는 자는 나를 살살 건드리며 “넛지!” 하던 일이 생각났다. 그렇게 넛지(nudge)라는 건, 부드럽지만 뭔가 자극을 주어 일깨우는 것을 의미한다. 스위스 미술관에서 이 ‘건드림’은, 장황한 설명이나 강압적인 힘 없이도, 작은 자극에 즐겁게 데굴데굴 굴러가는 아이의 자발적인 모습을 보게 했다. 마치 등굣길에 “빨리 걸어!” 하고 재촉하면 질질 끌며 걷지만, 떨어지는 눈송이를 잡으려고는 한참 뛰어가던 모습과도 비슷했다. 엄마인 나에게 작동한 ‘넛지’는, 자발성에 대한 조금 더 이해한 것이었다. 버튼을 누르면 바로 작동하는 아이를 의미하는 게 아님을 깨닫게 했던 것이다. 함께 가는 즐거움을 공유하기 위해서는, 기 싸움이 아니라 아이의 팔을 살짝 건드리는 마음, 아이의 의견을 존중하는 마음도 필요했다.


아이의 삶에도 작은 불꽃이 필요할 때

올해 태어날 둘째가 아니었다면, 아마도 나는 아이의 독립성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둘째의 자리를 준비하면서, 비로소 첫째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깨닫게 되기도 했다. “동생이 오니까 이제 널 도와주기 귀찮아서가 아니야!” 아이에게 말했다. “네가 잘 자라야 하기 때문이야” 이 모든 순간이 엄마에게 그런 것처럼 아이에게도 부드럽고 기분 좋은 자극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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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현수 베이비조선 영국통신원 (hyunsookoh@gmail.com)
글을 쓴 고현수는 성곡 미술관과 오페라 갤러리에서 전시기획 및 큐레이터로 일했으며 결혼 후 영국으로 이주해 런던 유씨엘 대학에서 박물관, 미술관 교육학을 공부했다. 현재 가장 큰 관심사는 ‘아이와 함께 가는 박물관, 아이와 함께 즐길 수 있는 박물관’이다. 주말이면 색연필 통 하나 열어놓고 하루 종일 미술관에서 노는 많은 영국아이들처럼, 내 아이가 박물관과 평생 좋은 친구가 되기를 바라며 함께 박물관 나들이를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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