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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아줌마와 뉴요커 아빠의 육아 스토리]워킹맘의 연말 다이어리

By글 제니퍼박-밀러Posted2018.01.10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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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연시라 아이의 학교 행사가 거의 2주에 1회꼴로 잡혀있었다. 현장 학습, 선생님과의 학기별 면담, 육성회 성금 바자회를 위한 공연, 부모의 학기별 10시간 의무 봉사까지 하루가 멀다 하고 끊임없이 날아오는 공지를 보며 남편과 스케줄표를 놓고 실랑이를 벌였다. 행사들이 오전에 잡혀 있으면, 비교적 오전 시간에 여유가 있는 남편이 참석해주리라 은근 기대하게 된다. 회사에 연이어 반차 내는 것도 눈치 보이고, 출장도 있고 해서다. 직장과 아이의 스케줄이 실타래처럼 얽힐 때면 어쩔 수 없이 직장이 우선 순서로 오는 현실에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런데 이번 공연을 앞두고 아이는 엄마의 참석을 당당하게 요구했다. 다른 집은 엄마들이 오는데 자기는 아빠만 학교에 온다는 게 그 이유였다. 우리 가정은 출근 시간이 비교적 여유 있는 남편이 아이를 학교까지 등교를 시켜왔다. 일 년에 2~3일 우연찮게 학교 휴교일과 회사 정상 근무가 겹치는 날에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내가 월차를 내곤 하지만 항상 회사에 눈치가 보이는 게 사실이다. 휴가일은 정해져 있다 보니, 아이가 아파서 결석해야 하는 날을 대비해 소위 ‘연차’는 알뜰살뜰하게, 그리고 현명하게 사용해왔다. 

“사무엘, 엄마 출근해야 하는데 어쩌지. 아빠가 오전 공연에 가고, 방학식 날 엄마가 반차 내서 일찍 데리러 갈게. 그날은 엄마랑 데이트하자 응?” 아이는 그 말이 섭섭했나 보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면서 “다른 엄마, 아빠는 둘이 같이 학교에 오는데, 난 왜 항상 아빠만 와요? 엄마는 회사를 사무엘보다 더 사랑해요?”라고 연이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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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점심, 결국 아이 친구 아빠로부터 전화가 왔다. 사무엘이 자기만 부모님이 모두 없다고 시무룩해져 있다고 했다. 아이와 통화를 한번 해보는 게 어떻겠냐며 연결해줬다. “아침 공연 마치고 아빠는 나를 교실에 데려다 주지 않고 회사로 바로 갔어. 오후에 공연이 또 있는데 아빠도, 엄마도 없어서 너무 슬퍼!” 슬프다는 아이의 말이 순간, 내 가슴을 훅 파고들었다. 무슨 말로 위로가 될까? 너에게, 그리고 나에게. 
  
아이는 “엄마가 데리러 오면 안 돼요? 나 엄마 아침에 100초밖에 못 봤어요!”라고 말했다. 워킹맘으로 살면서 어깨부터 힘이 쭉 빠지는 날이 더러 있지만, 그날은 정말 속수무책이었다. ‘100초라니…….’ “엄마 퇴근해서 빨리 갈게, 닌자 놀이 5번 하자!”라고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멍하니 컴퓨터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는데 상사가 회의실로 들어오라고 했다. 연말이라 1년 평가가 있었다. 괜스레 직장 평가도 생각만큼 높게 나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아이는 엄마의 사랑이 더 필요한데 눈썹 휘날리게 퇴근하고 달려가면 아이는 잠들어있고, 나를 반기는 건 산더미 같은 집안일, 제로섬 같은 워킹맘의 현실이 그날따라 참 고단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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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도대체 뭐하고 사는 거지?’ 

그날 밤, 뒤늦게 들어온 남편은 나의 퉁퉁 부은 눈을 보고 모든 상황을 눈치챘는 지 아이에게 말했다. “사무엘, 우리 다 같이 엄마 안아주고 ‘We are MILLER family!’라고 한번 외칠까?” 아이는 천진난만한 목소리를 던지며 나를 꼭 껴안아 주었다. 아이의 포근한 기운이 오롯이 전해졌다. 다사다난했던 2017년 워킹맘의 라이프는 그렇게 끝났다. ‘아무쪼록 2018년, 한 해도 잘 부탁해. 나를, 그리고 일하는 엄마를 둔 우리 아이를.’ 잠든 아이의 손을 잡고 기도했다.

글 제니퍼박-밀러   
글을 쓴 제니퍼박-밀러는 현재 CJ 미주법인에서 Sr, SCM manager로 일하고 있다. 일이 삶의 중심인 양 싱글로 아시아-유럽-미국을 돌아다니며 일하다가, 38살에 늦은 나이에 유태인 집안과 결혼한 경상도 아줌마다. 유태인 시댁을 통해 아이 양육에 대해 매일 배우고 깨달으며 일, 육아, 결혼 세 마리 토끼의 균형을 잡고자 고군분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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