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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미술교육 이야기

너라는 놀라움, 아이의 성별을 알게 된 날

By고현수 베이비조선 영국통신원Posted2018.01.08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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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아이와 여자아이를 위해(1989-1992)_데미안 허스트_캔버스에 나비와 가정용 광택제_출처: 데미안허스트 웹사이트
여자의 아니 엄마의 직감이란

선명한 꿈 때문에 잠에서 깼다. 친정 아빠가 열어서 보여주신 상자 안에서 빨강과 파랑, 갖가지 나비가 마법처럼 날아올랐다. 한 번도 그런 꿈을 꾼 적이 없거니와 참 좋은 느낌이 들었기에, 괜스레 기분이 좋았다. 남편은 지나가듯 웃으며 말했다. “태몽 아닐까?” 그런데 그게 정말 태몽이었음을 알고 나서, 여러 상황을 종합해 보니 여자아이일 거라는 생각이 강해졌다. 첫째 때는 돼지 통구이를 걸어둔 식당을 보면 뛰어들어가서 당장이라도 먹고 싶었는데, 요즘에는 과일, 채소에 눈길이 간다. 기분도, 느낌도 아들인 첫째 때와 달랐다. 핑크 옷을 보면 끌리고, 여자아이 이름을 상상하게 됐다. 딸과 엄마인 사이에는 동성의 뭔가 통하는 느낌 있어서일까? 친정엄마는 “딸이 자라며, 엄마도 인생을 다시 사는 것 같아.”라고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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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성별을 확인한 순간! 영화 브리짓 존스 베이비(2016) 의 한 장면
두근두근, 두 번째 스캔 날

임신 기간 동안, 영국에서는 보통 두 번의 초음파 스캔을 한다. 초기에 바로 아기집부터 확인해주는 한국과 달리, 테스트기만 믿고 기다리다가 12주 때 처음으로 아기 모습을 보고, 19-20주 때 마지막 스캔을 통해 아기를 확인한다. 영화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에도 바로 이 20주 스캔이 나온다. 우여곡절 끝에 ‘아빠 후보’ 가 된  두 남자를 차례로 스캔에 데려가고, 의사는  어색한 듯이 “이츠 어 보이!”라고 두 번 발표하며, 브리짓은 아무것도 모르는 남자친구와 처음인 것처럼  감격해하는 장면이다. 
태평하게 기다리다가 막상 날짜가 다가왔을 때, 20주 스캔의 의미는 ‘성별 확인’보다 더 크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때는 하나하나 사이즈도 재고 꼼꼼히 봐요.” 나보다 한 달 정도 먼저 아이를 가진 친구가 말했다. “예를 들어 심장의 심방, 심실 모두 잘 작동하는지, 척추도 보고요. 저의 경우엔 아기가 잘 안 움직여서 핫초코 마시고 오라고 하면서 시간도 오래 걸렸어요.” 과연 심방, 심실이 박자에 맞춰 잘 움직일지, 갑자기 확신이 잘 가지 않았다. 영양제를 빼먹었던 것, 라면을 먹었던 것도 생각이 났다. 어떻게 일일이 신경 쓰냐며 쿨한 임산부가 되려고 했지만, 이 순간만은 마냥 여유로울 수는 없었다. 두 달 전에 5분 들여다본 아기는 어떻게 잘 성장해야 하는지 알고 있을까? 엄마가 직접 아기를 만들 수 있다면, 힘들어도 이렇게 불안하진 않을 텐데 말이다. “저도 아기가 나오기 전에는 항상 불안했던 것 같아요.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요.” 옆집 엄마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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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그날 아침, 일찌감치 핫초코까지 마셔두고 병원에 도착했다. 조산사는 스크린으로 아기의 여러 부분을 찾아 보여주고 마우스를 클릭해서 사이즈를 쟀다. “이건 아기의 심장이에요. 크기는.... 정상이에요. ”클릭 클릭하는 소리가 방에 울릴 때마다, 긴장감에 스크린만 응시하고 있었다. 한동안 진행하더니, 조산사는 아기의 배 부위에 있는 작은 동그라미 두 개를 가리켰다. “콩팥이에요.” 콩팥? 그 생각은 하지도 못했는데, 허를 찔린 기분이었다. 모든 것이 경이로웠다. 무력하다는 걸 알기 때문에 오히려 더 고맙다는 생각이 드는 것 같았다. 내가 잠자는 동안에도 생명이 이루어져 가고 있었다는 고마움. 돌아보면 갓난아기를 보며 언제쯤이나 밤잠을 제대로 잘까, 얘가 언제나 학교를 갈까, 했었다.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리에 가는 것처럼 어느새 ‘되어져’ 있었다. 꼭 맞는 자리에 생겨난 두 개의 콩팥에 진심으로 고마웠다. 
“이제 성별을 알고 싶나요?” 1분 있으면 결과를 알게 되는 상황이었다. 딸이라는 강한 느낌, 설명할 수 없는 직관이 현실로 드러나는 걸까? 정말 아기와 나 사이에 사인이 있었던 걸까? 바로 그때, 조산사는 뭔가 찾았다는 듯이 당당하게 손짓했다. “아기 다리 사이에 상징이 보이네요. 남자아이입니다!” 

아들 둘, 더블 트러블이라던가 

한동안 조용하던 나와 남편은 복도를 걸어 나오며 마주 보고 웃음을 지었다. 한참 뒤에야 말했다. 난 내가 두 아들의 엄마 될 줄은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영국 친구들도 위로 어린 축하를 건넸다. “어-어. 더블 트러블.” 아들 둘과 딸 하나를 키우는 친구는 장난스레 말했다. 아기만으로도 일거린데, 아들이라니 두 배의 일거리라는 소리.  그러나 모든 상황의 반전에서도 우리를 둘러쌌던 것은 당혹감보다는 분명 기쁨이었다. 그리고 이 밑도 끝도 없는 기쁨은 참 낯설었다. 예상이 깨지고, 확신했던 느낌은 맞지 않았고, 가족 내 성별 밸런스도 깨진 셈인데, 그런데 민망함도 없이 즐거웠다. 
정신이 들고 나서야, 그렇게 의지했던 나비 꿈을 곰곰이 되짚어 보게 됐다. 전에 일하던 갤러리에서 봤던 영국 작가 데미안 허스트의 나비 작품 생각도 났다. 현존하는 제일 비싼 작가라는 타이틀이 아니어도, 커다란 핑크 하트 캔버스에 흩어진 나비들은 당장 사서 걸고 싶을 정도로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그러나 작품에 가까이 서자, 나비들은 물감에 범벅이 되어 박제가 된, 삶이 없는 아름다움만을 드러내고 있었다. 내 생각이라는 캔버스에 예쁘게 만들어진 것보다도, 나비답게 자유롭게 나는 것이 더 아름다울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했었다. 
이 부산스러웠던 20주, 내가 배운 것은, 주어진 것이 나의 예상과 다르더라도 기쁘게 받아들 수 있는 낮은마음이었다. 내가 선택하고 개척해가자고 배워온 세대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기다리고 바라는 것은 어렵고 낯선 감정이었다. 딸일지 아들일지, 느낌에 의지해서 맞춰보려고도 했지만, 내가 선택하지도 만들지도 않은 아이라는 존재는, ‘나’라는 범위에서 훨씬 넘어서기도 하는 것 같다. 그렇게 난 아들 둘의 엄마가됐다. 아이를 키우며 자신 있게 걸어가기보다 조마조마 낮아지지만, 그건 아이가 나의 계획을 깨고 자기만의 큰 원을 그리는 과정이라는 것을 기억하고자 했다. 확실한 건, 우리는 그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기쁨을 만날 것이라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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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titled(2001) _캔버스에 나비와 가정용 광택제,_ 출처: 데미안 허스트 웹사이트
고현수 베이비조선 영국통신원 (hyunsookoh@gmail.com)
글을 쓴 고현수는 성곡 미술관과 오페라 갤러리에서 전시기획 및 큐레이터로 일했으며 결혼 후 영국으로 이주해 런던 유씨엘 대학에서 박물관, 미술관 교육학을 공부했다. 현재 가장 큰 관심사는 ‘아이와 함께 가는 박물관, 아이와 함께 즐길 수 있는 박물관’이다. 주말이면 색연필 통 하나 열어놓고 하루 종일 미술관에서 노는 많은 영국아이들처럼, 내 아이가 박물관과 평생 좋은 친구가 되기를 바라며 함께 박물관 나들이를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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