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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헤어질 때마다 엄마는 한 뼘씩 자란다

By글 김수림Posted2018.01.02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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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겨울이지만 눈 대신 비가 온 어느날, 여동생의 결혼식이 있었다. 요즘에는 흔한 풍경이 돼버린 주례 없는 결혼식이었다. 아빠가 성혼선언문을 읽으면서 결혼식의 행사가 시작되었다. 아빠가 성혼선언문을 나지막한 목소리로 읽어 내려갔다. “우리 작은 딸...”이라는 말 한 마디에서부터 코끝이 찡해졌다. 평소에 가벼운 농담을 건네고, 딸들에게 무심한 듯 애정 표현은 하지 않는 아빠였다. 그런 아빠가 “우리 작은 딸”이라고 말하는 한 마디에는 수식어를 잔뜩 갖다붙인 애정 표현보다 더 진심어린 깊은 사랑이 담겨져 있었다. 아빠는 결혼식이 끝난 후, 친척들이 모인 자리에서 “큰 딸을 시집보낼 때는 정신이 없어서인지 철이 없어서인지 몰랐는데, 작은 딸이 시집간다니 허전하더라고. 오늘 손님들이 올 것 같아서 청소를 하는데, 환한 낮인데도 작은 딸 방의 불은 켜놨어. 어두우니까 웬지 더 쓸쓸해 보여서” 아무렇지 않은 듯 웃으면서 얘기를 하는 아빠의 모습에서 쓸쓸하고 서운한 마음이 느껴져 울컥했다. 

부모가 자녀를 본인의 둥지에서 떠나보낸다는 것은 어떤 마음일까? 감히 어떤 말 한 마디로 표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난 아빠의 쓸쓸함과 서운함이 염려가 됐다. 텅 빈 허전한 마음으로 인해 한동안은 마음 고생을 할 거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자녀가 결혼을 할 때에, 자녀의 독립을 인정하면서 받아들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빠의 마음을 내가 이해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겠지만, 나 역시 벌써 어린 두 아이의 작은 독립들마저도 서운함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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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이가 태어난 순간부터 부모는 아이와 수없이 많은 이별을 경험한다. 이때마다 부모는 좌절과 슬픔을 느낄 수밖에 없겠지만, 건강하게 이별을 준비하고자 하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좌절과 슬픔을 견디고, 자녀와 안정적인 관계가 형성될 수 있을 것이다. 내 품에 안겨서만 살 수 있을 것 같던 큰 아이가 세상을 향해 두 발을 내딛고 내 품을 벗어났던 그 날, 대견하면서도 젖을 빨면서 내 품에 있었던 큰 아이가 어느새 다 커버린 것 같아서 아쉽고 허전한 마음이 들었다, 센터에 찾아온 36개월 된 아이를 둔 엄마는 아이가 엄마 손을 잡고 종종 걸음으로 어린이집을 보냈던 첫 날을 회상하면서 말했다. 
“내가 더 떨렸어요. 눈물이 났어요. 막상 보내려니 안쓰럽고, 보내지 않고 싶었어요. 근데 아이는 엄마랑 떨어질 때 울지도 않고 신나하는 거 있죠”

나 또한 두 아이를 키우면서 경험했던 일이다. 어린이집을 보내는 첫 날, 큰아이를 보낼 때 경험을 했음에도 작은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발걸음이 설레면서도 무거웠다. 워킹맘이었던 우리 엄마 역시 어린이집에 날 보내는 첫 날 직장을 가는 차안에서 한없이 울었다던데. 하지만 부모는 아이가 세상에 잘 적응하고 독립하기 위해서는 내 품에 끼고 지낼 수는 없다는 것을 슬프지만 깨달아야한다. 아직 우리 두 아이가 결혼할 날은 멀었겠지만, 그 때의 허전함을 누구보다 잘 이겨내려면, 지금부터 독립하고자 하는 아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가짐을 연습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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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자세로 아이와의 독립을 준비해야하는 걸까? 대상관계이론의 대가인 심리학자 말러(Mahler)는 10-16개월이 되면, 아이가 안정되게 부모의 곁을 떨어져 나갈 수 있게 엄마는 근거지(아지트)의 역할을 해주고, 아이들이 세상을 탐험하는 과정을 같이 즐거워해줘야 한다고 말한다. 아이가 품에서 벗어나 경험하는 세상을 함께 즐겨주는 것이다. 그러다가 아이가 엄마 품에서 벗어나 경험한 세상이 무섭고, 두려워서 돌아올 때에는 안식처가 돼주는 것이다. 또 하나, 독립을 받아들이는 부모는 자신의 욕구에 따라 아이를 대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원할 때 다가가는 부모라고 한다. 요즘 우리 둘째 아이는 자신이 애정하는 ‘미녀와 야수에 나오는 벨’ 인형을 가지고 노는 것에 빠져있다. 혼자 종알종알 말하는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 꼬옥 숨막힐 듯 안아주었더니 “퀙! 아냐, 싫어”라고 하면서 나에게 우는 목소리로 짜증냈다. 예쁘다고 사랑스럽다고 안아주었던 나의 애정 표현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무안하기도 하고 내심 서운했다. 생각해보면, 아이의 욕구는 무시한 채 내 감정에만 치우쳐서 아이가 즐겁게 놀고 있는 상황을 방해한 셈이니 아이의 짜증스러운 반응은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이때에는 차라리 아이의 놀이에 함께 즐거워해주고, 반응해주는 것이 적절한 애정 표현이었을 것이다. 대신, 아이가 안아달라고 손을 내 밀 때를 놓치지 말고 안아주자. 

아무리 친밀한 연인들 사이에서도 부부 사이에서도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적당한 거리 없이 지내다 보면 갈등이 생기기 마련이고, 거리가 너무 멀면 소원해진다. 이와 마찬가지로 부모와 자녀 사이에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나는 두 아이의 엄마로서 살아가면서, 우리 아이들과 작고 큰 이별을 경험할 때마다 좌절감과 슬픔 때로는 상실감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나와의 이별을 통해서 우리 아이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게 될 것이고, 새로운 만남들을 시작할 거라는 사실을.

마더테레사 수녀님이 하신 말씀 중에 이런 말이 있다. “당신을 만나는 모든 사람이 당신과 헤어질 때는 더 나아지고 더 행복해질 수 있도록 하라” 우리 아이가 나와 헤어질 때마다, 더 성장하고 세상을 배워가면서 행복하길!

글 김수림 
글은 쓴 김수림은 2세 여아, 5세 남아를 키우고 있는 두 아이의 엄마다.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및 소아정신과 임상심리전문가 과정을 거쳐 TV 프로그램 <슈퍼맨이 돌아왔다> 출연, 현재 허 그 맘 심리상담 센터 마포지점 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동시대 육아맘으로 아이를 키우면서 어려움을 겪는 엄마들에게 좀 더 현실적이고, 실천 가능한 육아법을 전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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