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전문가칼럼

[가족소통전문가의 상담실 속 이야기] 아이를 위한다면, ‘아빠효과’를 놓치지 말자

By글 김진미(빅픽처 가족연구소 대표)Posted2017.08.10 16:29

해당기사 크게보기 해당기사 작게보기 이메일발송 해당기사 프린트 페이스북 트위터

“아빠 또 놀러오세요”
요즘 한 제약회사 광고에서 엄마 품에 안긴 아이가 출근하는 아빠에게 하는 인사말이다. 어쩌다 한 번씩 얼굴을 보는 아빠는 아이에게 놀러오는 사람이라는 거다. 재미있지만 슬픈 현실을 반영하고 있어서 씁쓸했다.

기사 이미지
한국 아빠들은 정말 바쁘다. 201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자료에 의하면 한국 근로자들이 1년간 일한 총시간은 OECD 회원국 중 2번째로 긴 것으로 나타났다. 평균보다 347시간이나 많다. 
어디 근무 시간 뿐인가? 퇴근 후에도 회식과 술자리가 이어진다. 급변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일자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 자기계발에도 시간을 쏟아야 한다.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도 현실이 따라주지 못하는 것이다.   
이렇게 가족을 위해 일터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아빠들은 아이와 놀아주는 일에 서툴다. 경험이 없으니 어떻게 놀아줘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어떻게 대화해야 하는지도 잘 모른다. 친밀감이 형성되기 어렵다. 그러다보니 점점 가족 대화에 끼지 못하고 주변으로 밀려나게 된다.

엄마가 있어서 좋다. 나를 예뻐해 주셔서.
냉장고가 있어서 좋다. 나에게 먹을 것을 주어서.
강아지가 있어서 좋다. 나랑 놀아주어서.
아빠는 왜 있는지 모르겠다.

인터넷에 떠돌았던 한 초등학교 2학년 아이의 시다.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아빠, 그러나 정작 가정에서 설 자리가 없는 한국 아빠의 씁쓸한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지민씨 부부는 남편의 외도 문제로 부부상담을 시작했다. 그런데 상담을 하면서 남편의 방황이 매우 사소한 것에서 출발했음을 알게 되었다.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밀려나기 시작한 남편의 자리에 대한 서운함이었다. 어느 날 아이 반찬을 집어먹었다는 아내의 핀잔에 자존심이 상했다. 기분 나쁜 내색을 하니 유치하다고 비난을 한다. 피곤하다며 성관계도 거부한다. 몸과 마음이 거부당하는 느낌이 쌓여갔다. 아이가 자라면서 아내의 차별은 더 심해졌다. 공부에 집중해야 한다는 이유로 가정의 모든 질서가 아이 우선으로 돌아갔다. 일찍 퇴근을 해도 아이가 학원에서 올 때까지 저녁을 먹지 않고 기다려야 했다. 아이 학습 분위기 망치니 거실에서는 TV도 보지 말라고 했다. 당연히 아내와의 말다툼이 잦았다. 아이마저 아빠를 거부하는 느낌이었다고 한다. 아이는 모든 일을 엄마와 의논했다. 아빠가 물어보면 형식적으로 대답할 뿐이었다. 아빠가 집에 있으면 슬슬 눈치를 보고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외로움이 밀려왔다. 집에 일찍 들어가기 싫었다. 친구와 술을 먹는 날이 많아졌다. 그러던 중 동호회에서 만난 여자와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고 마음을 주게 되었다고 했다.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했는데 정작 가족 안에서 존재감을 느끼지 못하고 설 자리를 잃어버리는 아빠들이 많다. 자녀의 존경을 받기는커녕 남처럼 어색한 관계가 될 때 아빠들은 허무감에 빠진다.

기사 이미지
가정에서 아빠가 설 자리가 없을 때 부부 관계는 물론 아이들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아이들은 커갈수록 아빠가 필요하다. 아빠의 사랑을 받지 못한 여자 아이는 남자에게 사랑받고자 하는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이리저리 떠돈다. 자신을 사랑한다고만 하면 부적절한 사람과도 사랑에 빠진다. 아빠의 인정을 받지 못한 남자 아이는 삶의 만족감이 없고 공허하다. 자신감이 없으며 인정에 집착한다. 가정에서 아빠의 자리를 찾는데 공헌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 바로 아내다. 남편이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지 못한다 해도 아내가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아빠의 자리는 만들어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의 심상에 아빠가 어떤 존재로 그려져 있는가이다.  

나는 2003년 아들을 데리고 공부하러 미국에 갔다. 그때 아들은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상담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아들이 대학에 들어가던 해 나는 홀로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러니까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아들은 아빠와 분리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남편은 나에게 더 없이 좋은 남편이었지만 아빠로서는 어설픈 사람이었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성장했기에 아버지의 역할과 모습에 대한 그림이 없었다. 게다가 아들과 오랫동안 떨어져 살았기에 함께 공유할 추억도, 친밀감을 형성할 기회도 부족했다. 그러다보니 감정적으로 부딪히는 일이 많았다. 그런데 성인이 된 아들은 아빠를 인생의 롤모델로 여기며 존경한다. 나와 일상적인 이야기를 주로 나눈다면 아빠와는 철학과 문학, 시사 전반에 관한 이야기를 오래도록 깊이 나눈다. 함께 보낸 시간도 적었는데, 아버지를 경험해보지 못한 미숙함으로 실수도 많이 했는데, 아이는 어떻게 아빠를 그렇게 좋아하게 된 걸까?

기사 이미지
그건 다행히도 우리의 부부 관계가 좋았기 때문이다. 나는 항상 남편의 좋은 점을 아이에게 말했다. 단점도 인정했지만 장점을 많이 들려주었다. 아이에게는 아빠에 대한 좋은 이미지가 그려진 듯하다. 커가면서 아이는 아빠를 존경했고 남편은 그런 아들과 사랑에 빠졌다. 남편이 아이들과 시간을 보낼 수 없을 만큼 일터에서 전쟁을 치루고 있다면 아내는 남편을 인정해야 한다. 왜 가족에게 무심하냐고, 왜 아이들과 놀아주지 않느냐고 불평하며 다투지 말라. 놀아주지 않는 것보다 다투는 것이 아이들에게 더 해롭다. 아빠의 무심함보다 부부의 싸움이 아이들은 더 불안하다. 

엄마가 아빠에 대해 좋은 말을 한다면 아이들 머릿속에는 아빠에 대한 좋은 이미지가 그려진다. 놀아주지 않아도, 가끔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도 아이들은 아빠에게 상처받지 않는다. 그러나 엄마가 아빠에 대해 불평하거나 나쁘게 말하면 아이들은 아빠가 싫어진다. 아빠의 존재를 무시한다. 아이를 잘 키우려고 최선을 다하는 엄마일수록 협조하지 않는 아빠에게 불평하고 무시하며 다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아이에게 집중하고 남편을 폄하할수록 아이는 밝고 건강하게 자라지 못한다.

기사 이미지
남편을 인정하고 칭찬하라. 아내가 남편을 칭찬하면 아이들은 저절로 아빠를 존경하게 된다. 아빠를 존경하며 자라는 아이들은 삶의 목표가 뚜렷하며 바위처럼 든든한 지원군을 품고 살게 될 것이다. 

글 김진미(빅픽처 가족연구소 대표)bigpicturefamily@naver.com

이메일발송 해당기사 프린트 페이스북 트위터

목록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