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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미술교육 이야기

레디 셋, 고! 영국의 학기말, 그리고 시작된 ‘여름방학 학기’

By고현수 베이비조선 영국통신원Posted2017.07.24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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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기말, 영국의 교실 풍경은?
영국 초등학교에서는 9월에 새 학년으로 올라가니, 여름은 1년을 마무리하는 바쁜 시기다. 학기말 고사를 보고 작별을 아쉬워하던 나의 초등학교 시절을 떠올리며 바라보니, 영국학교의 학기말 풍경을 말그대로 놀자판이 벌어진 터였다. 방학 2주 전부터 파티와 놀이로 일정이 꽉 차 있었다. 작별 파티, 써머 페어 등 학교 행사, 근처 공원으로 오전내내 피크닉을 가기도 했다. 아이스크림을 먹고, 나무에 올라가고, 놀이터에서 노는 모습을 보니 이미 여름방학이 시작된 것은 아닌지 착각이 들기도 했다. 여유롭게만 생각하기엔, 나는 학원도 과외도 없이 학교교육에만 의지하는 엄마다. “오후에는 학교에서 수학 수업 했어?” 묻자 “아니, 오후에 특별 놀이시간이 있었거든” 도헌이는 즐거운 얼굴로 대답했다. 내가 보기엔 특별 놀이시간이 아니고 특별 수업시간이 필요한 상황이다. 

걱정도 잠시, 여름방학과 혼동되는 학기말 분위기에 익숙해지던 어느 날, 도헌이가 성적표를 집에 가져왔다. 1년간 배운 교과 내용을 수학, 작문, 독서 세 부문으로 나누어 평가한 레포트다. 수업 후 이루어지는 일대일 학습을 통해 학습목표마다 아이의 이해도를 평가하고, 잘 따라오고 있는 부분은 초록색, 더 학습이 필요한 부분은 오렌지색과 빨간색, 그리고 깊게 잘 이해하고 있다고 평가되는 항목은 보라색으로 표시한다. 처음 성적표를 받고는 “이게 다야?” 앞뒤로 성적표를 뒤집어 보기도 했다. 그러나 백분율도, 등수도 없는 이 성적표는, 색깔의 개수는 별로 중요한 게 아닌 듯했다. 다른 친구들에 비해 얼마나 더 잘하느냐는 아무런 실마리가 없었지만, 어떤 부분을 좀 더 보충해주면 좋겠는지를 학습목표별로 파악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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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표를 받고 난 몇일 뒤, 학부모 면담이 이어진다. 강당에 반마다 책상을 놓고 와글와글 부산한 분위기지만 영국 엄마들도 아이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 10분의 시간을 귀한 기회로 여기는 듯 했다. “학기말에는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속속히 알고 피드백을 주기 때문에 들을 것이 많아요. 질문도 미리 준비해가고요”. 학부모 면담에서 선생님은 학업성취나 태도에 대해 중심을 두고 상당히 구체적으로 이야기했다. “도헌이는 수학문제를 풀 때 한가지 방법으로 푸는 편이예요. 다양한 응용방법으로 풀 수 있도록 방학에 도와주면 좋겠어요.” 읽기를 좋아하니 여름방학동안 출판사에서 하는 독서나 작문 프로그램에 참여하라고 격려해주기도 했다. 

이 면담은 칭찬하는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진다. 면담에 함께 참석하는 아이들은 선생님의 얘기를 들으며 어깨가 들썩들썩 한다. 도헌이는 친구들에게 모델이 되는 아이라며 다정하게 마무리해준 선생님과의 면담. 충격에 휩싸인 것은 나보다도 도헌이었다. “미스 펄이 날 그렇게 생각하는지 몰랐어.” 그리고는 그날 저녁부터 수학문제를 더 열심히 푸는 것이었다. “난 모델이 되는 아이니까”.

어느 반에 어떤 선생님, 어떤 친구와 같이 배정을 받는지도 엄마들의 큰 관심사인데, 미리 같이 가고 싶은 친구를 조사해서 같은 반에 배정받도록 한다. 도헌이도 이름을 적어낸 세 친구 모두와 같은 반이 됐다. 리셉션(프리스쿨)에서 1학년 올라올 때에는 아예 반이 바뀌지 않고 그대로 올라온 터라 궁금했다. 다양한 아이들과 만나봐도 좋을 텐데, 이미 친해진 아이끼리 반을 함께 가게 하는 이유가 있을까? 담임 선생님은 이렇게 설명했다. “리셉션에서 1학년, 2학년에서 3학년은 교과내용만으로도 큰 변화가 있기 때문에 이 중요한 시기에 아이들이 안정감을 가질 수 있도록 반을 바꾸지 않아요. 다른 학년에도 시간과 노력을 들여 사귄 관계를 잘 유지하도록 도와 주기 위해서 세명정도는 꼭 같은 반으로 보내주죠” 그저 놀면서 자라면 된다는 자유방임의 철학을 가진 듯했던 영국학교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학업 분위기에 세심하게 신경을 쓰고 있구나 생각했던 것은 이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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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방학마다 전국적으로 시행되는 리딩 챌린지, 웹사이트에 등록하고 독서량을 체크하며 책 선물이나 메달도 받을 수 있다.
여름방학은 새 학기의 또 다른 이름
학기말은 자연스럽게 여름방학 계획으로 이어지는 듯 했다. 집에 놀러 온 도헌이의 친구 라드빈에게 여름 방학 계획을 물으니 “메달을 많이 딸 거예요! 리딩 챌린지와 테니스에서는 메달을 따고, 축구에서는 트로피, 가라테에서는 새 벨트를 딸 계획이예요” 늘 느긋하고 조용한 라드빈이 여름방학에는 메달 사냥꾼으로 변신하는 것일까?  

행사와 프로그램을 알아보며 여름방학을 준비하는 엄마들과 대화하며 궁금증이 조금 풀렸다. “메달 따는 건 아주 쉬워요. 리딩 챌린지는 아이들이 지역 도서관에서 지정된 책 몇 권만 읽으면 메달을 받는 전국적인 여름 행사에요. 캠프에 참여만 해도 트로피를 받구요. 동기부여가 될 뿐 아니라 새학기에 학교에 가져갈 수가 있거든요.” 새 학기 첫 조회시간에 여름방학에 받은 메달이나 상장을 가져가서 박수치고 축하한다고 했다. “여름동안 건강하고 즐겁게 어울려 지냈다는 것을 축하하는 외에 특별한 특기나 향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그게 여름방학의 포인트일 테니까요.” 

또 다른 곳에 더 큰 의미를 두는 엄마들도 있다. 친구관계다. 방학동안 매주 다양한 친구들과 플레이데이트를 잡거나 방학 프로그램을 같이 등록하려고 스케쥴을 열심히 맞춘다. “교제는 여름방학에 해 두면 좋아요. 한 두 번만 따로 만나도 아이들은 급격히 친해지니까요”. 저마다의 모습으로 여름 방학을 준비하는 가족들은 학기 사이의 빈 공간이 아니라, 앞으로 있을 수많은 학기의 준비로서 받아들이는 듯 보였다.

특기를 갈고 닦고 캠프에 참여하며 아이 인맥관리도 한다는 또 하나의 학기, 여름방학. 도헌이와 나는 한국행을 위한 짐을 싸고 있었다. “긴 여행이네요. 같이 뭔가 하면 좋을 텐데, 조금 아쉽지 않아요?” 긴 여행이라, 영국 엄마들의 눈으로는 충분히 그렇게 보일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엔, 새학기를 위해 친구관계를 굳게 하는 것이나 자존감을 높이는 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을 찾을 수 있는 기회였다. 바로 가족들을 만나고, 한국어로 마음껏 말하고 생활하며 쌓게 되는 한국에 대한 감각. 무엇보다 언젠가 아이의 마음속에 조금씩 생겨날 “나는 누구일까?”에 대한 대답을 준비할 수 있기에 여름을 통째로 투자해도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긴 여름방학을 잘 쓰는 특별한 법이 있을까? 반짝이는 메달이나, 특별한 학습 프로그램도, 연수도 누구에게나 잘 듣는 특효약은 아닐 것이다. 학기를 잘 마친 아이들의 작은 등을 두드려주고, 자신감과 건강함이라는 아이의 바탕을 채우는 여름을 준비하고 싶은 것은 영국엄마도 한국엄마도 같은 마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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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현수 베이비조선 영국통신원 (hyunsookoh@gmail.com)
글을 쓴 고현수는 성곡 미술관과 오페라 갤러리에서 전시기획 및 큐레이터로 일했으며 결혼 후 영국으로 이주해 런던 유씨엘 대학에서 박물관, 미술관 교육학을 공부했다. 현재 가장 큰 관심사는 ‘아이와 함께 가는 박물관, 아이와 함께 즐길 수 있는 박물관’이다. 주말이면 색연필 통 하나 열어놓고 하루 종일 미술관에서 노는 많은 영국아이들처럼, 내 아이가 박물관과 평생 좋은 친구가 되기를 바라며 함께 박물관 나들이를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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