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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아이들의 이유 있는 과외활동, 애프터스쿨

By고현수 베이비조선 영국통신원Posted2017.06.25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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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프터 스쿨은 깍두기?
“테니스 정말 안 하려고? 친한 친구들도 하잖아.” 아이는 고개를 흔든다. 학기마다 방과후에 한 시간씩 이루어지는 애프터 스쿨은 언어, 운동, 음악 등 다양한데다가 같은 선생님에게 배우면서도 따로 레슨을 받는 것보다 저렴해서 효율적인 옵션이었다.  그래서 주변 엄마들의 리뷰도 참고하며, 이번 여름학기부터 테니스를 하기로 내 마음 속에 정해 둔 참이었다. 테니스의 경우 시험을 통해 레벨도 딸 수 있고 경기에도 나갈 수 있을 테니, 좋은 특기도 될 것이 눈에 보이는데도, 도헌이는 굳이 같은 날 이루어지는 합창단에 들어가고 싶다고 했다. “이번 주 합창단은 정말 잘됐어.” 도헌이가 마치고 나오면서 뿌듯했다. “라이온 킹 노래를 배웠어”. 큰소리로 노래 부르는 건 차 안에서도 항상 하는 일인데, 잘된 게 뭐가 있단 말일까? 안타까운 마음에 속으로 중얼거렸다. 
 
웬일인지 영국 엄마들은 이런 아쉬움이 훨씬 적은 것 같았다. 사립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나 교육열이 더 높다는 지역의 얘기를 들어봐도, 주로 아이들에게 결정권을 주고, 분위기도 목표의식보다는 두서없이 자유롭다고 한다. 바이올린 수업에는 꼭 엄마가 참관을 해야 하고, 수영 클래스에도 엄마들이 자원봉사를 해야 하는 걸 보면, 그저 한 시간 더 놀리자고 애프터 스쿨을 등록하는 것은 아닌데 말이다. 그 비용과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만큼 성과가 있으면 하는 건 같은 마음일 텐데, 영국엄마들, 혹시 애프터 스쿨에 기대감이 너무 낮은 것은 아닐까?  나중에 다들 일대일 수업을 할 생각으로, 그냥 깍두기로 참여하는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어떤 기준으로 선택하고, 아이에게 무엇을 키워주고 싶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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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아이, 지금 프랑스어를 하고 있는 걸까?
 “도헌이가 자기는 3개 국어를 말할 수 있다고 하기에 어떤 거냐고 물었더니 영어, 한국어 그리고 프랑스어라고 하더라고요” 네가 프랑스어를 말한다고? 그동안 프랑스어 수업을 등록하긴 했는데, 몇 달째 아직도 1부터 10까지 세면서 자랑스러워한다. 혹시 도헌이만 프랑스어가 영 아닌가 싶어 성과가 있는지 다른 엄마에게 살짝 물어봤다.  “네! 휴가 때 프랑스에서 우리 아이가 사람들에게 ‘봉쥬’하고 말하고 다니더라고요. 못 알아듣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래도 거의 반년째 프랑스어를 해왔는데, 프랑스어 말하기 대회를 나가기는커녕, 한마디 인사말을 하는 게 기뻐할만한 일인 걸까?  그 엄마는 웃으며 말했다. “사실 계속 하고 있는 게 성과라면 성과일지 모르겠어요” 그러면서 친구엄마가 “아이가 재미있어 하는 한 계속 시킬 것 같아요. 하다가 언제든지 그만둬도 되고요.”
  
영국엄마들이 무조건적인 이해심이 넘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천천히라도 재미를 붙여가며 계속해가는데 비중을 단단히 두고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은, 어느 정도 수준이 되기 전에는 시작한 것으로 치지도 않았던 나의 마음과 달리, 프랑스어 수업을 ‘깍두기’가 아닌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엄마들을 보면서였다. 프랑스어 동화구연대회에 나가게 됐기 때문이 아니라, 정말 재미있게 하고 있기 때문에 3개 국어를 말할 줄 안다고 한 도헌이의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은, 부분적이나마 ‘영국적인 교육’에서 배워온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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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몰랐던 합창단의 비밀
합창보다는 차라리 악기를 시키고 싶었다는 나의 고백에 한 엄마는 깜짝 놀라며 말했다. “그래요? 저는 학교에서 하는 수업 중에는 합창이 제일 좋다고 생각했는데.” 그 말을 듣고 보니, 나에게도 새롭게 보이는 것이 있었다. 수영이나 테니스와 달리 개인 레슨으로는 할 수 없는 것, 그것은 하루 종일 함께 지내고 점심을 먹는 친구들과 나란히 서서 같은 노래를 부르는 경험이라는 것이었다. ‘나중에 아이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만한 것’을 찾는 나의 눈에는 합창단이 아이에게 주는 기쁨이 너무도 작아 보였다. 그러나 지금, 아이에게 단순한 즐거움을 주고 화음을 이루는 시간은 낭비가 아니라 다른 데서 줄 수 없는 것을 주는 더욱 합리적인 결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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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프터 스쿨: 삶을 맛보는 수업
아이들과 돌아오는 하교길, 가을학기 애프터 스쿨에 대해 얘기하는 중에 루카스 엄마는 일주일에 이틀 정도는 비워둔다고 했다. 새 학기에 해 볼 것도 많은데 5일중에 2일이나 비우다니, 왜일까? “어디 가야 한다는 것 없이 학교 끝나고 집에 오는 시간도 좋은 것 같아서요. 오늘 도헌이랑 노는 것처럼 아이들이랑도 놀고요.” 앞서가는 도헌이와 루카스는 각자 하고 싶은 말만 하는, 말도 안 되는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루카스 엄마와 길에 서서 그 대화가 끝나기를 기다려주며 스스로에게 되살린 것은, 사실 우리는 지금 바쁘지 않다는 것이었다. 부모가 재촉하지 않는 한, 아이의 삶은 조급하지 않다. 물론 가끔은 다섯 살의 여름, 지금 아니면 안 된다고 조급한 마음이 들 때도 있지만, 지금이 아니면 안 되는 것은 음악, 수학 교육만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지금 아니면, 친구들과 다섯 여섯 살끼리의 대화를 나누지 못할 테니까. 어디서 써먹지는 못할 디즈니 노래를 다 함께 합창하며 만족하는 시간은 지금 아니면 안될 테니까. 
문득 아이가 악기를 하거나, 운동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목적이 무엇인지 놓치지 않는 것, 이것이 요즘 나에게 필요한 양육의 지혜가 아닌가 싶다.

고현수 베이비조선 영국통신원 (hyunsookoh@gmail.com)
글을 쓴 고현수는 성곡 미술관과 오페라 갤러리에서 전시기획 및 큐레이터로 일했으며 결혼 후 영국으로 이주해 런던 유씨엘 대학에서 박물관, 미술관 교육학을 공부했다. 현재 가장 큰 관심사는 ‘아이와 함께 가는 박물관, 아이와 함께 즐길 수 있는 박물관’이다. 주말이면 색연필 통 하나 열어놓고 하루 종일 미술관에서 노는 많은 영국아이들처럼, 내 아이가 박물관과 평생 좋은 친구가 되기를 바라며 함께 박물관 나들이를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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