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중국 육아 이야기

[‘베이징런’이라는 이름의 엄마를 만나다]"아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것은 용기와 도전 정신”

By임지연 베이비조선 중국통신원Posted2017.04.18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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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 차오양취에서 만난 박정렬 글로벌 매니저
#여기 베이징에는 이 곳을 또 다른 고향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엄마들이 있다. 그들의 공통점은 중국에서 긴 여행 또는 거주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간 뒤,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다시 베이징으로 돌아왔다는 점이다. 그리고 처음부터 ‘베이징런(北京人)’이었던 것처럼 현지에서 취업을 하거나, 창업에 성공했고, 이제는 현지에서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소위 ‘잘 나가는 인사’가 됐다. 출신 지역과 하는 업무, 나이 등이 모두 다른 그들이 가진 공통된 이름은 모두 ‘엄마’다. 중국에서 거준 그들의 성공비결을 들어봤다.
 
지난해 중순부터 지금까지 중국에서는 역사상 유래가 없다는 심각한 반한감정이 고조되고 있는 분위기다. 고고도 미사일 사드(THAAD)배치로 인한 양국 갈등 탓이다. 그런데, 이 같은 혐한의 중심지 베이징에서 유독 돋보이는 한국인 여성이 있다. 
일명 '메디컬 시티 진황도' 프로젝트로 불리는, 베이징 외곽 지역인 진황도(秦皇島)에 대규모 의료 시설이 건축되고 있는 현장 한 가운데에서 한·중 양국 기업의 글로벌 매니저로 종횡무진하고 있는 박정렬 대표다. 진황도에 건설되는 의료 센터는 현재 미용 수술 등을 목적으로 해외로 빠져나가는 자국민을 붙잡기 위해 수 조원 규모로 조성되는 관광의료복합휴양지 형태로 알려져 있다.

중국 정부가 직접 나서서 한국의 성형 피부미용, 치과, 줄기세포 및 의료보건 R&D, 아카데미 교육 등 전방위적 사업을 진행하는 것이다. 그리고 해당 프로젝트 총괄 업무는 '북경해협박아과기유한공사'가 독점 운영하고 있다. 이날, 북경해협박아과기유학공사의 글로벌 매니저로 있는 박 대표를 만났다.

Q 베이징에 오게 된 계기는?
2002년 8월로 기억된다.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아들의 교육을 위해 베이징으로 건너 왔다.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중국의 세계적인 경제 대국으로 부상하기 이전이었지만, 소위 ‘뜨는 나라 중국’에 대한 비전 하나만 믿고 아이와 단 둘이 서울을 떠나 베이징에 도착했다.

당시 베이징은 허허벌판이었다는 표현이 가장 어울린다. 낡은 버스는 바닥을 드러낸 채 달리는 일이 많았고, 길거리에는 의젓한 상점 보다는 노점상들이 줄지어 1위안(약 170원)짜리 중국식 부침개를 파는 시골 같은 분위기를 가진 곳이었다. 서민들이 살기에는 그때가 좋았다.

물론 우리가 살았던 당시의 베이징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낙후된 곳에서 어떻게 사느냐”고 걱정했지만, 아들과 함께 1위안짜리 빵 하나, 두유 한 잔으로 끼니를 했다. 10위안 정도면 하루 삼시 세끼를 해결할 수 있던 때였다. 불편했지만 그 나름대로 운치가 있고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중국어를 따로 배울 수 있는 기회는 없었다. 다만 1개월 단기 코스로 북경재경대학교에서 연수를 한 것이 전부다.

Q 지금까지 어떤 일들을 했나.
가장 먼저 와서 한 일은 대교 눈높이 교사다. 아들과 같은 또래의 아이들이 부모와 떨어져서 지내는 동안 학업을 바로 잡아줄 수 있는 어른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홈스테이를 하면서 학습지 교사로도 일을 했다. 이후 아이가 장성한 후에는 교사 일을 그만두고 한국으로 일자리를 찾아가려는 조선족 청년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했다. 한국에는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현재 중국에 거주하는 조선족 가운데 우리말을 완벽하게 구사하는 이들의 수는 매년 감소하고 있다. 우리말을 배울 수 있는 적당한 교육기관이나 환경이 조성돼 있지 않는 탓이다. 이 점이 매우 안타까워 한국으로 떠나려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우리말 교육을 진행했고, 당시 인연을 맺었던 이들 중 상당수는 지금껏 연락을 하며 지낸다.

이후 중국경제신문사, 동방스타 엔터테인먼트 등을 운영했고, 지난 2013년 아들이 중국에서 결혼한 후 나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갔다. 한국에서 또 다른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사업은 중국보다 더 어렵고 왠지 사람들이 나를 보는 시선이 낯설게 느껴졌다. 11년 만에 다시 찾은 내 조국 한국은 오히려 생소한 나라였고, 마치 부적응자처럼 외톨이였다. 그때 ‘재기개발원’이라는 곳에서 사업에 실패한 사람들의 재기를 돕는 프로그램에 참여한 경험이 있다. 그 곳에서 만난 동기 중 한 명과 한국에서 손꼽히는 VR기술 개발 사업체 ㈜ RVSST 대표로 일을 하다 전문 경영인에게 맡기고 올 초 다시 베이징으로 돌아왔다. 현재 베이징에서 몇 가지 사업을 진행 중에 있지만, 가장 중점적으로는 중국 국무원 국책 사업인 '메디컬 시티 진황도'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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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황도 국제 건강성 프로젝트가 한창 진행 중인 진황도 일대의 모습.
일명 ‘진황도 국제 건강성 프로젝트’이라고도 불리는 해당 프로젝트는, 중국 정부가 해외로 유출되는 의료 인력과 성형, 피부 미용 등을 위해 외국을 찾는 소비자의 발길을 국내로 돌리기 위해, 북경 근교인 이 일대에 대형 의료기관 및 센터를 유치하고 건립하는 종합형 의료 사업이다. 중국 중앙 정부 및 허베이 정부, 한국의 ㈜아름인터내셔널, ㈜ C&K, 국제의료문화교류협의회, LK CHINA 등 한국 의료 전문 기업 상당수가 참여하고 있다.

더욱이 해당 프로젝트에는 북경대학교 병원 등 중국내 일류 대학 병원들과 함께, 미국 콜롬비아 대학병원 등 세계 각국 유수의 의료기관 및 인재들이 줄기세포, 암, 치매 등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임상실험을 할 수 있는 R&D센터를 운영하고 있어, 향후 글로벌 의학 발전의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Q 베이징에 사는 매력은?
지난 2013년 한국으로 잠시 돌아가기 이전에는 재중국한국인회여성부회장 ,경제포럼여성부회장,학부모자원봉사회 회장 등을 역임했고 한국에서는 세계 여성 한인회장단 회의(WKWA) 부총재, 한국다문화연맹부총재 등을, 현재는 대한상공회의소 회원 자격으로 유학생 신분으로 베이징에 온 젊은 친구들부터 주재원, 사업가 등 다수의 교민들을 만나고 있다. 그러면서 개인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외국인 근로자라는 신분으로 살아가는 이들 중에 해외에서의 생활에 어려움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점도 몸소 배워가고 있다. 나 역시 아이와 단 둘이 베이징에 머물며 갖가지 고생을 다 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나처럼 고생하는 일 없이 보다 안전하고, 편안한 생활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최근 한인 타운에 국신부동산 문을 열었다.

한국에서 운영하는 일반적인 부동산 중개 업무만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어를 할 줄 모르는 엄마들에게 학교를 소개해주거나, 적당한 병원을 안내해 주는 등 다양한 업무를 지원해주고 있다. 늦은 밤에도 가끔 “박 대표님, 저희 집 문이 닫혔는데 열쇠를 잃어버렸어요.”, “선생님, 저희 집 화장실 변기가 막혔는데 어떡하죠?” 등 사소한 질문을 하는 전화가 걸려온다. 이 때 열쇠 기술자를 보내주고, 변기 수리사에게 연락해준다. 그래서 우리 부동산은 일명 ‘베이징 114’로도 불린다. 물론 이 모든 것은 무료다. 그 외에도 학교 진학을 앞둔 자녀를 둔 엄마들에게 학교 상담도 진행하고, 비자 문제로 불이익을 당하는 이들이 있다면 직접 영사관에 연락하거나 찾아가서 해결해준 사건도 수차례 있다. 도와주는 사람 없이 낯선 땅에서 막막하고 답답한 심정을 가장 잘 알기 때문이다.

교민들이 나를 찾고, 또 내가 그들에게 작은 일이지만 도움을 줄 수 있는 자리에 있다는 것이 베이징에서 사는 가장 큰 매력이다. 또 이것이야 말로 내가 생각하는 작지만 큰 정의를 내 삶 속에서 실천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Q 앞으로의 계획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따른다’는 뜻을 담은 '종오소호(從吾所好)'와 기본(基本)이 바로 서면, 길 또한 자연스럽게 생긴다는 '본립도생(本立道生)'이라는 말을 참 좋아한다. 좋아하는 것을 따르면서도 기본에 어긋나지 않는, 자연스러운 삶을 추구하면서 남에게 이로운 이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여행이나 취업, 또는 거주지로 베이징에 마음을 두고 있는 엄마들이 해외에서의 삶에 대해 막연하게 걱정만 하기보다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 당시 마냥 젊지만은 않았던 나도 해낸 일이다. 지금의 2030대 젊은 엄마들은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베이징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공존하는 도시이다. 그러면서도 사회주의와 민주주의가 함께 공존하는 도시이기도 하다. 용기와 도전, 그리고 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베이징은 누구에게나 열린 무궁무진한 지역이다. 

임지연 베이비조선 중국통신원 (cci200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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