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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열 손가락 깨물어 덜 아픈 손가락이 없다? 있다!

By박승혜 베이비조선 명예기자Posted2017.04.17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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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질게 터지고야 말았다. 얼마 전 첫째인 아들이 “엄마는 동생만 예뻐해”라며 슬피 울며 말했다. “나도 예뻐해 줘” 라며 뾰족하게 말하고 방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걷기 시작하면서부터 오빠를 이기려 기를 쓰는 둘째 때문에 언제나 양보하며 사는 큰 아이인데, 최근 엄마가 동생을 더 예뻐하는 게 느껴지니 속상함이 겹겹이 쌓였나 보다. 우는 아들을 꼭 안아주며 “엄마는 너도 많이 사랑해” 라고 말해주었다. 물론 엄마 말을 액면 그대로 믿는 눈치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런 말에 잠시 위안을 받는 듯했다.  

고백하자면, 요즘 나의 행동이 불공평하긴 했다. 이상하게 첫째 아들이 떼를 부리면 화부터 내게 되고, 둘째 딸이 떼를 부리면 “우리 까꿍이 이거 하고 싶었구나” 라며 아이 마음부터 읽어주었다. 혼을 낼 때도 달랐다. 첫째를 혼낼 때에는 단단히 화가 난 목소리에 엄한 표정이 자연스레 지어졌지만, 둘째에게는 애써 화난 표정을 지으며 결국 “그랬쪄?”로 끝나는 애교 섞인 목소리로 대응했다. 사정이 이러하니, 큰 아이는 동생을 더 사랑하는 엄마의 본심을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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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말에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속담이 있지만, 사실 그 뒤에 “다만 더 아픈 손가락, 덜 아픈 손가락이 있다”란 말을 붙여야 좀 더 현실적이지 않나 싶다. 그리 멀리 갈 것 없이 4남매인 우리집에서도 더 아픈 손가락, 덜 아픈 손가락이 있었다. 집안 장손으로 모든 일가친척의 사랑을 받은 큰오빠, 그 다음으로 태어나 관심을 적게 받았던 언니, 순한 막내딸로 할아버지와 아빠 사랑을 받은 나, 막내란 이유로 모두의 사랑을 받은 남동생까지. 장성한 뒤 서로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다들 편애 때문에 힘들었노라고 고백했다. 모든 이의 사랑을 받았던 큰오빠는 과도한 사랑이 오히려 짐처럼 힘들게 느껴졌고, 성격 좋은 남동생조차도 바로 위에 누나(그게 나다)에 비하면 부족한 듯 느껴지는 아빠의 사랑에 속상했다고 털어놓았다. 언니는 오빠와 동생들에게 양보를 자주해 부모님께 차별 받았다는 생각을 했다고 했고. 가난하고 팍팍했던 삶 가운데서 나름 고르게 사랑을 주려고 노력했던 부모님 밑에서 다들 ‘덜 사랑’ 받았던 기억에 한때 마음 아파했다는 사실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그런데 ‘덜 사랑’ 받았던 기억에 마음 아파했던 언니조차 편애를 했다. 언니의 첫째 딸은 양가의 첫 아이라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언니가 둘째 딸을 낳고부터 유독 둘째를 물고 빨며 예뻐하는 게 눈에 도드라지게 보였다. 사실 생김새나 행동을 보면 첫째가 예쁘고 얌전하고, 둘째는 곱슬머리에 애교 있는 무법자 스타일이다. 그럼에도 언니와 형부는 그런 둘째를 더 예뻐했다. 
그런데 언니와 형부 심정을 안 것은 내가 둘째를 낳은 뒤였다. 머리로는 티를 내면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이미 둘째를 더 예뻐하는 행동을 무의식적으로 하고 있었다. 첫째도 많이 사랑하고, 이것저것 첫째에게 더 많이 해주는데 마음이 더 가는 건 둘째다. 사실 나는 남자 아이를 좋아했다. 둘째로 딸을 낳기 전에는 앵앵거리며 섬세하게 신경써야하는 여자 아이한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완고한 남아선호사상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지만, 본능적으로 남자 아이가 좋아 아들을 낳고 싶었다. 그런데 간절한 염원(?)이 이루어져 첫째는 아들을 낳은 것이다. 그러니 단순히 사랑스럽다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첫째가 좋았다. 오죽했으면 아들 사랑하는 시월드가 이래서 탄생하는구나 라는 생각도 했을까. 하지만 둘째를 낳고 보니 언제 첫째를 예뻐했던가 싶을 정도로 둘째가 사랑스러웠다. 둘째는 작은따옴표 모양의 눈을 가지고 있어 미인형과는 거리가 있는 아이지만 어느 순간 나도 언니처럼 둘째만 물고 빨고 있었다.  

요즘 나를 보면 열 손가락 깨물어 더 아픈 손가락, 덜 아픈 손가락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두 아이 모두 정말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존재다. 하지만 첫째를 100 사랑하면, 둘째는 120 정도 사랑하는 걸 느낀다. 문제는 이런 사랑을 나 혼자만 알아야하는데 아이들도 알아챈다는 거다. 똑같이 안아주고 있어도 아직 육감이 단단히 살아있는 아이들은 바로 느낀다. 엄마가 동생을 더 예뻐한다는 사실을. 엄마가 자기를 더 사랑한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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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덜 사랑’ 받은 기억은 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찾은 해법 하나는 까꿍이 시절처럼 아이를 자세히 보아 사랑스럽게 대해 주는 거였다. 나태주 시인의 시 <풀꽃>에는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는 구절이 나온다. 아들의 편애 선언 이후 의식적으로 아들을 이전보다 더 자세히 보아주었다. 아들 이야기를 아이돌 사생팬처럼 열심히 들어주고, 멋지게 블록 작품을 만들고 혼자 으쓱해있는 아들 머리를 ‘쓰담쓰담’ 해주었다. 아들 얼굴을 자주 들여다보니 어렸을 때 격하게 사랑했던 감정이 다시 살아났다. 절로 엉덩이를 자주 두드려주게 되고, 자주 껴안아주게 되었다. 
 
또 하나 방법은 아들 말에 바로 반응해주기 였다. 엊그제 아침에는 동생이 울거나 부르면 바로 달려오는데 자기가 울거나 부르면 늦게 온다는 아들의 말에 또 한 번 반성했다. 어렸을 때는 아들 부름에 즉각 반응해주었는데, 컸다고 아들에게 많은 부분 양해를 구했고, 아들 혼자 잘 하리라는 생각에 조금 늦게 반응했던 것 같다. 바로 실천 모드에 돌입했다. 아들 이야기에 바로 반응해주고, 아들 부탁에 바로 응해주었다. 그러자 아들의 사랑 주머니가 조금씩 부풀어 오르는 게 보였다.     

하지만 이렇게 노력해도 아들은 물론이거니와 딸 역시 커서 ‘부모에게 덜 사랑’ 받은 기억에 마음 아팠노라고 말할 때가 올지도 모르겠다. 부모가 되고 보니 어려웠던 형편에 자식 한 명, 한 명 특별하게 사랑하려고 노력하신 부모님의 사랑을 이해하게 된 나처럼, 우리 아이들도 그러한 때가 오리라 믿어본다. 그리고 그 이해함을 받기 위해 오늘 하루 한 점 부끄럼 없이 아들, 딸을 사랑해야겠다는 작은 다짐을 다시금 새겨본다. 

박승혜 베이비조선 명예기자(mercyu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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