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영국 미술교육 이야기

[영국박물관교육] 유아기에도 충분히 ‘가능한’ 역사 교육

By고현수 베이비조선 영국통신원Posted2017.04.03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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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유태인박물관
요즘 아이들은 우리 때와 달리 정치적인 이슈에 굉장히 민감하다. 지난 겨울, 광화문으로 부모 따라 나온 아이들이 적지 않은 만큼 부모들 역시 아이들에게 동시대의 역사와 정치에 대해 제대로 된 식견을 심어주고 싶어하는 듯하다. 어린 아이들이 ‘탄핵’, ‘가결’ 이라는 단어를 운운할 때면 참 낯설다가도, 이제 아이들에게도 우리나라의 역사를 제대로 알려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나 하는 희망적인 생각도 든다. 

우리의 과거에 분명히 존재하고 현재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역사라 하더라도, 너무도 참혹한 사건을 아직 어린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지 않은 것은 어느 엄마나 마찬가지다. 아이들에게 혼란과 두려움을 주고 싶지 않아서 일 것이다. 영국에서도 런던 전쟁박물관에 있는 홀로코스트 전시실은 14세 미만은 입장하지 않도록 권고하고 있고, 학살 또는 인종차별의 역사를 미리 가르쳐서 오히려 선입견을 주는 것은 아닌지 의견이 분분하기도 하다. 유태인 엄마들은 어떤 방식으로 가르쳐야 충격을 주지 않을까 걱정하고, 독일 엄마는 아이에게 죄책감을 주지는 않을까 조심스러워한다. 그럼에도, 함께 대화하며 살아갈 아이들에게 언제까지 덮어둘 수도, 피할 수만도 없다는 것은, 영국에 살고있는 다문화 엄마들에게도 공통된 고민이다. 

할머니에게 들은 아끼꼬 이야기 
나는 일제시대의 이야기, ‘정신대 이야기’를 그 시대를 겪은 장본인인 할머니에게 들었다. 할머니는 머리를 땋아주면서, 봉숭아물을 들여주면서도 ‘명희’인 할머니의 이름을 일본어로 비슷한 ‘아끼꼬’로 바꿨다는 이야기, 정신대에 젊은 여자들이 끌려갔기 때문에 두려워서 결혼을 서둘렀다는 이야기들을 해주셨다. 그렇게 할머니 품에서 여러 일화를 들으며 아끼꼬라는 이름도 예쁜데 왜 할머니는 싫어했을까, 예쁜 이름보다도 할머니에게 더 중요한 것이 있는가보다, 생각하기도 했다. 이제 끌려갈까봐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평화로운 시대가 고맙게 느껴졌다. 

그 사건이 진실임을 ‘증언’해주던 많은 어른들이 이미 세상을 떠나셨다. 도헌이처럼 해외에서 살거나 조기 유학을 가는 어린아이들도 늘어간다. 그 사이에 다리를 놓아야 할 공간을 보게 된 엄마들은 고민이 깊어진다. 유투브나 SNS를 통해 중국, 일본 아이들과 영어 댓글로 교류하는 아이들에게 우리에게 있었던 아픈 사건 살짝 덮어두는 것이 과연 아이의 ‘동심’을 지켜주는 것이 될지 모르겠다. 교과서의 간략한 몇줄로 모두에게 편하고 쉽게 넘어가는 게 맞는 것일까? 이곳에서 일본 친구와 단짝처럼 지내는 도헌이에게 적대감이나 증오를 심어주자는 것은 아니다. 아빠, 엄마는, 어렵더라도 아이들에게 바른 것을 가르쳐주고 싶은 것이다. 

유치원생들도 찾는 역사 박물관
그렇게 관심을 가지던 중에 가보게 된 런던 유태인 박물관. 유태인이라는 민족성이나 종교에 집중된 박물관일거라는 예상과 달리, 유태인이라는 ‘독특함’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얼마나 다양한가’에 초점을 두는 박물관이었다. 이번에는 유태인 출신 영국 가수 ‘에이미 와인하우스’를 주제로, 세계가 함께 사랑했던 그녀의 음악과 인생을 따라가보는 전시가 한창이었다. 그렇다해도, 이 박물관의 핵심은 유태인 역사에 잊혀지지않는 아픈 사건을 다룬 홀로코스트 전시실이었다. 홀로코스트 전시라 하면 어두운 조명이나 엄숙한 분위기를 연상했지만, 막상 전시실에는 알록달록한 일상적인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단체로 찾아온 유치원생들이 재잘재잘 얘기하며 둘러보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이 전시실은 ‘레온의 이야기’라고 이름이 붙어 있었다. 행복하게 살고 있던 유태계 영국인 레온과 그 가족이 수용소에 끌려간 이야기, 수용소에서 만들어썼던 칫솔 등 일상용품, 레온이 소중히 간직했던 어린 아들 바니와 아내의 유물과 그에 얽힌 이야기였다. 어찌보면 참혹한 사진보다도, 앞으로 다가올 일을 모르고 행복하게 웃고있는 결혼식 사진이나 당시 두 살이던 바니가 남긴 작은 신발을 보면서 더 구체적인 슬픔이 느껴졌다. 승리의 순간도 사진과 이야기로 전시되어 있었다. 당시 여러 나라의 긴밀한 협조로 수많은 유태인 아이들이 극적으로 구출되었던 사건을 공부하며 전시실의 아이들은 기뻐하며 만세를 부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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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오전, 홀로코스트 전시를 보러갈까? ‘편안하게 배우기’를 표방하는 런던 유태인 박물관.
아이들이 도시락을 먹고, 웃고, 박물관 교육자와 함께 게임을 하며 홀로코스트를 배우는 풍경이 낯설기도 했다. 지금은 세상을 떠났지만, 이야기의 주인공인 레온은 생전에 이 박물관에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홀로코스트를 옛날이야기처럼 들려주었다며, 박물관 교육자는 ‘이런 중요한 역사를 한 사람의 경험으로 대표하는게 맞느냐는 의견도 있었어요. 하지만 홀로코스트는 유태인이 특별한 사람이어서 겪은 것이 아니라 우리와 똑같은 평범한 사람, 우리 주변의 사람들이었다는 것이 진실이죠. 또한, 이들이 겪은 충격적인 경험은 수치나 유물로는 도저히 다 표현할 수 없죠. 레온이 박물관에서 직접 들려준 그 살아있는 목소리야 말로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가장 좋은 매체였어요.”

‘힘’과 ‘정의’는 동의어가 아님을
2015년 9월에는 런던에서 ‘할머니들에게 정의를’이라는 강연회가 열렸다. 예산도 보조도 없이 런던에 살고있는 한인들이 서로 도와 장소를 찾고, 자원봉사를 하고, 식사를 준비하며 완성된 행사였다. 이때 4세부터 9세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위안부’ 역사를 아이들에게 어떻게 전해줄까 고민하다가, 할머니들이 미술치료시간에 직접 그렸다는 그림들을 보여주며, 그림책을 읽듯 또 옛날이야기를 하듯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성노예’에 대해 이해하지 못할 지라도, 아이들은 ‘가기 싫은 곳에 억지로 끌려갔던 것’, ‘힘이 약한 소녀들에게 하기 싫은 일을 시켰던 것’을 공감하고 이해했다. 아이들은 배를 태워져 먼 곳으로 보내지는 소녀들을 그린 할머니의 그림을 유심히 보며 기분이 어땠을까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어서 이야기를 바탕으로 그림을 그리는 세션에서, 아이들은 웃으며 즐겁게 그림을 그렸다. 이야기를 잘 이해한걸까 의심하던 것도 잠시. 네 살 아이의 그림에는 ‘무서워서 보라색이 된 소녀, 그리고 화가나서 빨개진 군인’을 나란히 그렸다. 파랑색을 온통 칠한 아이는  “할머니가 건넌 바다에요. 할머니의 마음은 바다처럼 차가웠을 것 같아요”라고 얘기했다. 벼락을 맞았지만 굳센 뿌리를 가진 나무를 그린 열살 소녀도 있었다. 힘이 센 것, 이기는 것, ‘쿨한’ 것을 더 좋은 것으로 생각했던 아이들도 ‘힘’과 ‘정의’는 동의어가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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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의 두살짜리 아들 바니가 남긴 신발. 런던 유태인 박물관 전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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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런던 한국문화원에서 열린 행사의 어린이 프로그램, ‘작은 운동가들little activists’
그렇게, 아픈 기억이라고 해서 심각하고 고통스럽게 전해야 하는 것은 아닐지 모른다.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팝을 들으며, 레온 그린맨 가족의 물건들을 보며, 봉숭아꽃을 볼때마다 생각나는 할머니의 소녀시절의 기억을 통해서도, 우리는 분노와 차별이 아니라 마땅히 기억해야할 역사를 아이들에게 가르쳐줄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이 이야기와 그리기와 웃음을 나누면서도 할머니들이 오랫동안 가슴에 묻은 장면들을 아이스럽게 소화하고 표현한 것 처럼. 미래세대에 진실을 전할 책임이란 건, 사회나 교과서나 학교에만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위안부’ 문제는 말하기 꺼려지는 참혹한 과거가 아니라, 진실을 지켜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수업임을, 평화로운 일상에서도 우리 아이들에게 알려줄 수 있을 것이다. 

고현수 베이비조선 영국통신원  (hyunsookoh@gmail.com)
글을 쓴 고현수는 성곡 미술관과 오페라 갤러리에서 전시기획 및 큐레이터로 일했으며 결혼 후 영국으로 이주해 런던 유씨엘 대학에서 박물관, 미술관 교육학을 공부했다. 현재 가장 큰 관심사는 ‘아이와 함께 가는 박물관, 아이와 함께 즐길 수 있는 박물관’이다. 주말이면 색연필 통 하나 열어놓고 하루 종일 미술관에서 노는 많은 영국아이들처럼, 내 아이가 박물관과 평생 좋은 친구가 되기를 바라며 함께 박물관 나들이를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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