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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만드는 엄마의 ‘딸과 책’] “나도 엄마를 혼내고 싶을 때가 있다고요!”

By글 고양이수염Posted2017.03.20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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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운 네 살의 시기를 지나고 자아가 강해진, 게다가 말이 빨라서 생각한 것 대부분을 큰 무리 없이 표현하게 된, 다섯 딸과의 싸움은 점점 더 힘들어진다. 회유, 간청, 협박, 협상 등의 카드가 먹히지 않고 수세에 몰리면 나는 마지막 패를 꺼내 든다. 심호흡하며 단전에 기를 모은다. 그 기를 위로, 위로 끌어올려 성대에 집중시킨다. 그런 다음 발사하면 그것은 다름 아닌 고함이다. 내 속에 이런 소리가 있었나 싶게 우렁찬 소리를 토해내고 스스로도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물론 나도 잘 안다. 아이를 혼낼 때는 절대로 소리 지르지 않고 이성적으로 조곤조곤 설명해야 하고 화를 억눌러야 하며 블라블라…. 수많은 육아 서를 통해서 읽었고 어느 정도까지는 그렇게 실천하지만 결국 나도 사람인지라 끓어오르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을 때는 어쩌겠나, 고함이라도 질러야지.

그런데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고 누가 그랬던가. 차가운 이성을 가진 좌뇌 지배적인(좀 과장하자면…. 하지만 아이가 좌뇌형 인간이라는 증거가 여기저기서 속속 드러나고 있다.) 딸에게 나의 고함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내가 그렇게 생각한 이유인즉슨, 증거 하나. "민재가 엄마 고함치며 화내는 거 하나도 안 무섭다고 그러네요." 하시는 이모님 말씀. 증거 둘. "엄마! 그렇게 큰 소리로 말하지 않아도 다 알아들어요!" 말하는 딸의 이야기. 그래서였는지 어느 순간부터 나는 육아 서에서 읽은 건 다 잊어버리고 고함부터 치며 딸을 혼냈다. 어차피 안 무섭다는데, 안 통한다는데, 내 속이라도 시원하자 싶었다.

그런데 그건 나의 완전한 착각이었다. 며칠 전, 밤부터 아침까지 딸과 힘겨루기를 하다가 급기야 폭발한 나는 전에 없이 큰 소리로 야단을 쳤다. 그런데 딸의 일격. "나도 엄마, 아빠 큰소리로 혼내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하는 거예요. 소리 지르지 마세요. 무서워요."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얼른 정신을 차리고 육아 서에서 본 문구들을 떠올리며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안아 주고 토닥여 주고 왜 소리치고 화냈는지 설명해 주었다. 마음이 풀렸는지 확인조차 하지 못하고 간신히 출근길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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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함쟁이 엄마> 유타 바우어 글 | 비룡소
내내 마음이 안 좋아서 무엇으로 딸의 마음을 풀어줄까 고민하다가, 이기적인 나는 내 마음부터 좀 달래자며 동지들의 육아 분투기를 찾아 인터넷 서핑을 시작했다. 그러던 중에 발견한 그림책 한 권. <고함쟁이 엄마>. 오늘따라 회사 컴퓨터가 작두를 탔나, 이건 무엇이냔 말이다. 미리 보기를 클릭하자 '오늘 아침 엄마가 나에게 소리를 질렀어요. 깜짝 놀란 나는 이리저리 흩어져 날아갔지요.'라는 글이 날아들었다. 흩어져 날아갔다는 말에 얼굴이 화끈거리고 가슴이 따끔거려서 차마 다음 장면으로 넘어갈 수가 없었다. 자위하려다 자폭하겠네 싶었지만, 어느새 나는 장바구니에 책을 담고 있었다. 아침에 주문하면 오후에 도착하는 바람직한 배송시스템 덕분에 나는 퇴근 전에 그림책 속에 고스란히 담긴 내 모습과 마주할 수 있었다. 내가 고함치고 화낼 때 저런 모습이겠구나. 그리고 내가 미처 살필 수 없었던 민재 마음도 발견할 수 있었다. 아, 내가 고함치면 딸은 온몸이 흩어져 날아가는 기분을 느끼겠구나. 책 속 엄마는 산산이 흩어진 아이의 몸을 모아 꿰매고 미안하다고 말한다. 여기까지는 나도 아침에 하긴 했는데. 과연 그걸로 된 건가. 꿰맨다고 꿰매지는 건가. 그 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질문들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좀 두려웠다. 퇴근 뒤에 아이를 어떻게 볼 것인가.

현관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다녀오셨어요!” 언제 그랬냐는 듯 예쁘게, 예쁘게 배꼽 인사를 건네는 우리 딸. ‘꿰매진 건가?’ 싶었다. 그날 밤, 무릎에 앉히고 책을 읽어줬다.
“엄마, 이 책 재밌다.”
“근데 민재야, 엄마가 미안하다고 말하면 다 풀어져?”
“응. 당연하지.”
엄마에 대한 아이들의 사랑은 미안하고 고맙게도 생각보다 단단하다. 근데, 너 왜 사고만 치면 이 책 가져오니?

글 고양이수염
글을 쓴 고양이수염은 다섯 살 딸내미처럼 많은 어린이의 고사리 두 손에 좋은 동화책이 쥐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만드는 아동서 편집자이다. 필명에 관해 물으니 “고양이는 수염이 없으면 먹이를 잡을 수도, 몸의 균형을 잡을 수도 없는 것처럼 아이들은 좋은 책이 없으면 마음을 키울 수도, 꿈을 키울 수도 없다”며 담담하게 말한다. 편집자 엄마의 ‘까탈스러운’ 손으로 골라낸 동화책과 그 책을 매개로 딸과 그려내는 일상에서의 우연의 일치가 관전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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