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영국 미술교육 이야기

'과학치' 엄마와 아들의 놀이 교육 “과학아, 안녕?”

By고현수 베이비조선 영국통신원Posted2017.03.10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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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시절, 과학 선생님은 “너는 이게 왜 이해가 안 가지?”하고 도리어 나를 신기한 듯 바라보며 질문하신 기억이 난다. 문제도 이해가 안 가는데 왜 이해가 안 가는지를 또 선생님께 설명해야 하다니 절망스러웠다 ‘나는 과학과는 전혀 관계없는 길을 갈거야. 왜 모두가 과학을 알아야 해?’ 획일화된 교육에 대해 개탄했다. 그 복잡한 개념들, 몰라도 살아가는데 아무 지장 없을 거라면서.

그러나 막상 일상생활에서야말로, 과학적 마인드의 부재는 불편함으로 바로 이어졌다. 제품 설명서를 꼼꼼히 이해하기보다 직관적으로 기계를 작동해보고, 불이나 전기가 관련된 장치는 혹시 ‘어떤 작용’이 일어나 폭발하거나 하지는 않을까 일단 멈칫하는 것은 비단 나 뿐일까?

과학 문제를 하나 더 맞추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달이 땅바닥에 ‘퍽’ 하고 떨어지지 않고 하늘에 계속 떠 있는 것은 요행이 아니라는 것, 과학은 세상을 이해하는 하나의 방식이라는 것을 아이에게 말해 주기 위해서는 나에게도 ‘자신감’이 필요했다. 어쩌면 과학교육에 앞서, 과학에 대한 선입견으로부터 엄마 자신을 구해내는게 먼저일지 모른다. 

과외선생님을 고용하다: 과학박물관의 궁금증 실험실
영국에 있는 과학박물관의 대표격이라고 할 런던 사이언스 박물관에서는 궁금증 실험실(wonder lab)이라는 새로운 전시실을 연 참이었다. 과학 영재를 만드는 집중 교육이 아니라, 과학에 대한 여러 생각을 펼쳐 놓고 접해보자는 것이 목적이었기에, 박물관은 적합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나, 전시실 안은 힘, 전기, 마찰력 등 듣기만해도 어려운 주제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 박물관에서 주제들을 풀어가는 방식이 독특했다. ‘마찰력’ 파트에는 개념을 길게 풀어놓은 설명 대신, 긴 미끄럼틀 세 대가 있었다. 하나는 나무로 된 미끈한 미끄럼, 다음은 플라스틱으로 된 것, 마지막은 인공잔디가 깔린 미끄럼이다. 

가마니 같은 썰매를 타고 나무 미끄럼을 내려오고는 너무 빠르다고 무서워하던 아이는, 잔디 미끄럼을 탈 때는 발로 밀며 내려왔다. 부연 설명은 필요 없었다. 한바탕 미끄럼틀을 타고 놀고 나면 누구라도 잊어버리지 않는다. 내 몸이 탄 썰매의 면과 꺼끌꺼끌한 면, 혹은 매끈한 면이 마찰하던 그 느낌 말이다. 

밑에서 바람이 세차게 나오는 환풍기 위에 종이 물체를 만들어 띄워보는 실험도 있었다. 옹기종기 모인 아이들은 서로의 실패와 성공을 보며, 평소에 만드는 종이 비행기모양은 이 방향의 바람에서는 소용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잘 뜨려면 아래가 무거워야 돼.” “날개는 더 잘게 찢어야겠어” 아이들은 별 대화 없이도 함께 놀며, 서로에게서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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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체험을 하며 과학의 개념을 익힐 수 있도록 꾸민 런던 사이언스 박물관 내 ‘궁금증 실험실’.
안에서 단순히 전시품을 둘인공 안개가 나오는 코너에 “안개는 기체가 아니라 액체라서 잘 움직여요” 라는 설명은 여전히 와 닿지 않았다. 그러나 아이들은 후후 불고, 손으로 부쳐 대고, 자기가 원하는 쪽으로 안개를 보내면서 놀았다. 레고 피규어를 안개 속에 넣고 혼자 연극을 하며 노는 아이를 보면서 언뜻 피부에 뿌리는 미스트가 생각났다. “그래, 미스트는 공기가 아니라 수분이지.” 설명을 붙들고 끙끙거리기보다, 자연스럽게 접하고, 관찰하고, 실생활과 연결하며 결국 받아들이게 되는 과학 상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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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첨단 테크놀로지, 아이패드나 스마트 폰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초고속으로 찍히는 카메라 앞에서 눈으로도 볼 수 없는 물방울이 떨어지는 장면을 포착해 보기도 했다.
양 손으로 누르면 도넛 모양의 하얀 연기가 나오는 커다란 고무 펌프를 보고 아이들은 미소 지었다. 도헌이는 “아, 이제 하늘에서 어떻게 구름이 만들어지는건지 알았어.” 하고 행복해했다. 정말 누군가가 하늘의 한쪽 구석에서 폭 폭 하고 펌프질을 하고 있는 걸까? 과학이라는 ‘팩트’는 막다른 길이 아니라 다양한 상상과도 만날 수 있는 교차로와 같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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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의 연구도 그 바탕에는 대단한 목적만이 아니라 ‘재미’가 있다. 박테리아로 쓴 크리스마스카드
과학으로도 놀 수 있는 힘을 기르기
도헌이의 친구, 모토의 아빠는 대학에서 생명공학을 연구하며 가르치는데 박테리아를 가지고 Merry Xmas라고 글자를 썼다며 보여주었다. 이유를 묻자 “재미로요.” 하고 대답했다. 집에서 ‘애완 생물’삼아 아메바를 열심히 기르기도 했다고 했다. 과학자나, 연극배우, 작가도 분야는 다르지만 저마다의 재미를 추구하며 관심이 시작된다. 우리 아이들이, 돈을 벌거나 유명해지려는 ‘목적’만이 아니라, 즐거움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전문가로 자라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그 노는 즐거움을 오랫동안 잃지 않고 일하면 좋겠다. 

삶에서 비로소 이해하게 되는 과학 법칙
내가 비교적 잘 이해하고 있는 과학 원리가 한가지 있다면 ‘작용 반작용 법칙’이다. 내가 벽을 밀면 벽도 나를 민다는 교과서의 설명은 통 이해가 안됐지만, 인간관계에서 나는 아프지 않고 남을 아프게 하는 법은 없는 것 같았다. 결국 이과적인, 또는 문과적인 사람이란 서로 반대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기 위해 걸어가는 길이 다른 것에 불과하다. 표와 그래프로 이해하는 친구도 있었지만, 인간관계의 아픔을 통해 작용 반작용을 배우는 사람도 있으니까 말이다. 과학이라는 각개 전투에서 일등을 하지는 못했지만 인생이라는 긴 길에서는 과학은 고민하던 많은 부분을 설명해 줄 수 있었다.

때로 엄마는, 아이에게 못해주는 것이 있을 때 미안하기도 하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나의 부족함 때문에 오히려 아이가 놀이로, 만들기로 과학을 접해봤다는 경험은 소중했다. 문제를 보자 마자 푸는 친구 옆에서도, 자기에게 맞는 방법을 차분히 찾아가는 그 자세를 아이가 배우기 원하기 때문이다. 한때 과학을 포기했던 엄마라도, 과학에 접근하는 다양하고 자유로운 방식을 가르치는 데는 결코 늦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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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현수 베이비조선 영국통신원  (hyunsookoh@gmail.com)
글을 쓴 고현수는 성곡 미술관과 오페라 갤러리에서 전시기획 및 큐레이터로 일했으며 결혼 후 영국으로 이주해 런던 유씨엘 대학에서 박물관, 미술관 교육학을 공부했다. 현재 가장 큰 관심사는 ‘아이와 함께 가는 박물관, 아이와 함께 즐길 수 있는 박물관’이다. 주말이면 색연필 통 하나 열어놓고 하루 종일 미술관에서 노는 많은 영국아이들처럼, 내 아이가 박물관과 평생 좋은 친구가 되기를 바라며 함께 박물관 나들이를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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