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영국 미술교육 이야기

남자아이, 튜튜를 입다

By고현수 베이비조선 영국통신원Posted2017.02.06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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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신저에 검정 타이즈와 흰 티를 찍은 사진이 떴다. 이게 뭐지? 하고 보는데 친구가 ‘우리 아들 발레 복. 물려줄 테니 도헌이 한번 시켜봐’ 한다. 남자아이가 발레까지나, 고맙지만 괜찮아, 라고 무심히 넘겼다. 기회가 있다고 모든 것을 다해볼 수는 없는 법이니까 말이다.

이 대수롭지 않은 일화가 다시 생각난 것은 요즘 도헌이에게 새로운 능력이 생겼기 때문이다. 색색 구슬을 나누듯 ‘남자아이 것’와 ‘여자아이 것’을 단박에 구분해내는 능력이다. 파랑 색연필은 남자아이가, 핑크는 여자아이가, 빨강은 함께 쓸 수 있다. 영화, 옷, 심지어 직업도 둘로 나누는 아이에게 “발레가 뭔지 알아?” 하고 묻자 도헌이는 확신에 차서 말했다. “여자애들이 핑크색 옷을 입고 다리를 올렸다 내렸다 하는 거야.” 

대학시절엔, 남아와 여아의 차이는 기르는 중에 생겨난 결과물일 뿐이라고 배웠다. 그런데 막상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은 그 차이, 생물학적으로 타고 난 것 같다고 입을 모으기도 한다. 어느 쪽인지는 몰라도, 여자아이와의 구분을 통해 자신의 남자다움을 드러내야 한다면 여성스러워야 하는 상대도, 남자다워야 하는 자신도 부담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 꼬이면 계속 불편한 가방 끈처럼.

축구교실에 보내 축구를 더욱 좋아할 수 있는 기회를 주면서도, 발레를 보거나 도전해볼 기회는 흘려 보내는 것. 아이가 발레를 ‘여자아이 것’이라고 선언해도 무심히 지나갔던 것. 이런 엄마의 ‘필터’가 아이의 관심을 ‘남자 것’이라고 쓴 작은 유리병에 넣어두는 것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에게도, 자기도 모르게 꼬여있던 끈을 펴는 ‘생각 스트레칭’이 필요하겠구나, 가만히 되새겨보는 시간이었다.

로망은 여성들만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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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가 드가의 ‘The Pink Dancers, Before The Ballet’
프랑스 작가 드가는 발레에 대한 그림을 1500점 이상 그리며 작품마다 겹겹이 예쁜 색의 튜튜, 핑크 토 슈즈, 발레리나의 우아한 포즈 등을 묘사했다. 하지만 사실 그림 속 ‘로망’은 눈으로 보는 발레의 화려한 면면에 대한 것만은 아니었다. 드가는 발레를 통해 ‘꿈꾸는 사람들’을 그렸다.

발레리나라고 모두가 일류 무용수 인 것도, 여유 있는 상황인 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실제로 드가의 여러 작품에서 모델이 된 14살 마리는 가난한 집안의 딸이었고, 작은 역을 맡고 있던 무용단에서도 지각을 했다고 쫓겨났다. 그럼에도, 드가는 무대에 서는 순간만큼은 주인공이 되는 어린 발레리나의 눈빛과 몸짓을 알아봤다. 발레리나도 꿈만 가지고 살 수는 없었겠지만, 현실이 힘들수록 등을 곧게 펴고 꿈을 믿지 않으면, 포기하기란 더욱 쉬웠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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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가 드가의 ‘어린 무용수’, 테이트 모던 소장
도헌이 역시 종종 레고를 가지고 사람들을 구해주고, 적과 화해하고, 다 함께 어울리는 한 편의 서사극을 한다. 이런 놀이를 통해 아이들은 삶의 여러 장면을 미리 연습하나 보다.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빠르다고 ‘치고’ 놀고 있는 아이에게 “네이트가 너보다 더 빠르잖아”라고 현실을 직시하는 말이 무슨 도움이 될까? 꿈을 꾸며 노는 동안에야말로 아이는 자란다. 세상에 살며 유연함을 매일 배워가야 하는 엄마 아빠에게도, 불가능한 꿈을 꾸어 보는 시간이 더 필요할지도 모른다. 
겨울, 그 유명한 ‘호두 까기 인형’의 시즌이었다. 몇 달 전에 예약한 표는 10파운드 정도의 저렴한 자리였지만 발레라는 예술에 깃들인 ‘꿈’을 보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이었다.

환상을 가지고 노는 발레라는 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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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조명이 켜지고 오케스트라의 음악이 시작되자, 발레리나들이 등장하기도 전에 “와”하고 작은 탄성이 나온 것은 그림 동화책 첫 장을 연 듯한 배경 한 폭 때문이었다. 물감으로 섬세하게 그린 듯한 배경과 크리스마스 트리 덕분에 저택에서 열리는 행복한 파티에 와 있다는 것이 벌써 믿어졌다. 본격적인 상상 놀이가 시작된 참이었다.

곧 어린이 무용수들이 춤을 추며 등장한다. 아이돌의 칼 군무처럼 딱 맞지는 않지만, 그 쿵쿵거리는 발소리는 매끈하게 편집된 영상보다 훨씬 더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이어서 어디선가 본 익숙한 상황이 전개된다. 클라라의 남동생 프리츠가 클라라의 호두까기인형을 탐내며 쫓아다니다가 결국은 망가뜨리게 되고, 클라라는 속상해 울기 시작한 것이다. 어둠 속에서 도헌이가 나를 쳐다본다. 남매의 다툼에 끼게 된 듯한 난감한 표정이다. 

“진짜가 아니야” 라고 속삭이기에는, 아이는 이미 ‘클라라’에 몰입되어 있었다. 키로 보나 나이로 보나 클라라를 맡은 발레리나는 분명 어른이었음에도, ‘어린 소녀라고 치고’ 하는 마법이 작동한 것이었다. 이렇게 시작되어 생쥐왕과 호두까기 인형이 결투하는 급박한 순간, 별 사탕 요정의 나라에서의 신기하고 즐거운 모든 순간을 함께 겪을 수 있었으니까. 무용수의 춤, 무대 연출, 음악과 조명이라는 모든 조각들이 어우러져 아이에게 ‘가짜’가 정말로 믿어지는 환상을 선사한 것이다. 

발레 속에서 여성, 남성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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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머리에 원피스를 입은 클라라가 집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동생과 다투는 누나이기도 하고, 대담한 모험을 함께 할 수 있는 친구이기도 하다는 것. 아이는 여성스러움이라는 한 단어만으로는 한 사람을 설명할 수 없음을 배우지 않았을까? 또 한가지, 핑크색을 입고 예쁘기만 하면 될 것 같았던 발레리나는, 사실 수많은 연습을 통해 춤으로 사람들을 믿게 만들 수 있는 ‘힘’을 가진 존재라는 것이다.

남자 무용수들의 춤은 자기 자신의 몸을 가지고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아름다움은 여성을 표현하는 형용사만은 아니라는 것도. 더욱 인상 깊었던 것은 별 사탕 요정의 여왕과 왕이 함께 춤을 추는 파트였다. 남자답거나 여자답게 보이려 애 쓸 필요 없으며 더욱 돋보이려는 경쟁이 아니라 서로 맞추어가는 조화가 초점인 춤이었다.

춤이라면, 유투브를 통해 간편하고 빠르게 원하는 부분만 골라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극장에 찾아가는 시간이나 인터미션에도 공연의 묘미를 찾을 수 있듯이, 항상 ‘남자아이’ 것만 오려내고 싶어하던 아이도 ‘남자’만으로는 온전한 이야기가 되지 못함을 느꼈을 것이다. 커튼 콜에 끝없는 박수갈채를 보내느라 빨개진 손바닥을 보여주며 미소 짓던 도헌이는 잠깐 사이에 더 자란 듯 했다. 

‘남자답게’가 아니라 자기답게
그렇지 않아도 할 것이 많은 우리 아이들이, 예술의 각 분야까지 속속들이 배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예술은 레슨을 해가며 갈고 닦는 특기로서가 아니라, 세상을 보는 창이기 때문에 중요하다. 예술은 남성, 여성이라는 구분보다 우리가 어떤 사람인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우리 안에 있는 뭔가를 건드려서 꿈을 꾸게 만든다.

아이가 남자답게 자라면 좋겠다고는 생각하면서도, 나는 아직도 무엇이 남자다움인지 정의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적어도 오늘 아이와 함께 발레를 바라보면서, 남자다움, 여성스러움은 애써서 훈련해야 하는 ‘기술’이 아니라 자기다움을 자유롭게 드러내는 것임을 마음에 넣어두려고 했다. 발레 속에서 본 ‘함께 추는 춤’이 환상이나 로망이 아니라 아이가 만들어갈 진짜 현실이 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고현수 베이비조선 영국통신원  (hyunsookoh@gmail.com)
글을 쓴 고현수는 성곡 미술관과 오페라 갤러리에서 전시기획 및 큐레이터로 일했으며 결혼 후 영국으로 이주해 런던 유씨엘 대학에서 박물관, 미술관 교육학을 공부했다. 현재 가장 큰 관심사는 ‘아이와 함께 가는 박물관, 아이와 함께 즐길 수 있는 박물관’이다. 주말이면 색연필 통 하나 열어놓고 하루 종일 미술관에서 노는 많은 영국아이들처럼, 내 아이가 박물관과 평생 좋은 친구가 되기를 바라며 함께 박물관 나들이를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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